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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광술을 보내며
[특별기고] 정광술을 보내며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8.03.2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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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북벽』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등산 마운티니어링』 펴낸 정광식

우리 등산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으로 기억될 것

정광술(酒)이란 별명으로 산악계를 풍미했던 정광식이 지난 3월 18일 우리 곁을 떠났다. 생자필멸이란 말이 있지만 불과 3일 전까지 SNS로 소식을 주고받던 정광식의 비보를 접하는 순간 전기충격을 받은듯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허영만 화백이 그린 정광식의 캐리커쳐.
허영만 화백이 그린 정광식의 캐리커쳐.

‘광술’은 술에 미쳤다는 뜻의 정광식 별명이다. 생전에 그는 술을 무척이나 즐겼다. 그는 1986년 동산토건 카이로 현장에 근무할 때 멀쩡한 정신으로 이집트 사막의 명봉 피라미드를 등반한 적이 있다. 이후 그는 파라오 신의 저주를 받아서인지 시름시름 앓기도 했다. 그는 광적일 만치 클라이밍에 심취해있었지만 어떻게 피라미드를 오를 생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산이 없는 사막의 나라이니 피라미드에라도 올라야 내면에서 분출하는 등반욕구를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등반의 동기야 어찌됐건 그는 그런 사람이다. 정광식은 생전에 아이거 북벽(1982년) 바룬체히말 북서벽(1984년) 에베레스트 남서벽(1991년)을 등반했고, 1989~1991년까지 네팔에서 빌라에베레스트라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히말라야를 찾는 한국산악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16년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마운티니어링 8판 편집 감수 회의를 마치고. 왼쪽부터 이영준 원종민 김선미 이용대 이혜진 정호진 정광식 정승권.
2016년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마운티니어링 8판 편집 감수 회의를 마치고. 왼쪽부터 이영준 원종민 김선미 이용대 이혜진 정호진 정광식 정승권. 당시 한창 설악산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하던 정광식은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고 있다. 

정광식이라는 이름을 기억 못하는 사람은 있어도 『영광의 북벽』(1989년 수문)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1991년 산악문화) 『등산 마운티니어링』(7판, 8판 2006년 2018년 해냄)정도는 기억할 것이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책들은 바로 정광식이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들이다.

4년 전 아이거 북벽에서 하강 중에 추락사한 정진현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정광식이 선물한 『영광의 북벽』을 읽고 아이거 북벽의 꿈을 키워왔던 청년으로 그를 아이거로 유도했던 사람은 직장선배 정광식이다. 그러나 그 청년은 끝내 아이거 북벽에서 돌아오지 못한 채 죽음의 나락으로 사라졌다. 이일로 정광식은 그 청년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깊은 자책감에 빠진 그는 시중에 유포된 자신의 저서 『영광의 북벽』을 모두 회수하여 불살라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나 했다. 그는 그토록 감정이 여린 사람이다.

비오는 날 우산을 배낭에 꼽고 선인봉을 등반 중인 한창 때의 정광식
비오는 날 우산을 배낭에 꼽고 선인봉을 등반 중인 한창 때의 정광식

그는 1982년 이 죽음의 벽을 남선우, 김정원과 함께 올랐고 이벽과 맞섰던 극한의 체험을 『영광의 북벽』이라는 기록으로 남긴 사람이었기에 아이거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출발 전 정진현의 아이거 등반을 강하게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정광식의 아이거 등반기는 마땅히 읽을거리가 없던 시절 한국산악계의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전해준책이다. 1983년 『영광과 죽음의 벽 아이거』(한국대학산악연맹)라는 제호로 보고서를 냈고, 1989년 『영광의 북벽』(수문출판사)이란 제호를 달고 유가지로서 첫 선을 보인 후 2003년 『아이거 북벽』(경당)으로 재간행됐고, 2011년 이산미디어에서 『영광의 북벽』으로 복간본을, 2017년 같은 제목으로 재판을 펴낸다. 한권의 산서가 네 번씩이나 복간을 한 일은 한국산서 출판사상 유례가 없었다. 이후 이 책은 아이거를 오르려는 산악인들에게 지침서이자 필독서가 되었다.

아이거 북벽은 성공한 사람에게는 ‘영광의 북벽’, 실패한 사람에게는 ‘죽음의 북벽’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북벽 등반의 어려움은 죽음으로 가득한 무시무시한 북벽의 신화들을 극복해야 등반이 자유로울 수 있다. 공포는 등반가들의 내면의 평정을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벽은 수많은 등반가들에게 정복되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책을 통해 아이거를 간접 경험한 산악인들은 힌터슈토이서 트래버스, 아이스 호스, 죽음의 비박, 신들의 트래버스, 하얀 거미와 같은 북벽의 지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독일의 한 등산잡지가 세계의 저명 산악인들에게 질문서를 보내 지구상에서 아름다운 산이 어디인가 물었다. 아이거라는 이름은 눈을 씻고 보아도 거론되지 않았다.

알파마요(5943m), K2(8610m), 마터호른(4470m), 피츠로이(3441m), 몽블랑(4807m), 그랑드 조라스, 시니올츄(6891m) 순으로 많이 거론된 산은 이것뿐이다. 그럼에도 가장 많은 화제를 뿌린 산은 어김없이 아이거 북벽이 거론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아이거 북벽은 다른 어떤 산보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도 아이거 북벽은 등산가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절대적인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아이거 북벽 등반에 성공한 사람들 조차도 아이거는 다시 오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한때 알프스 6대 북벽을 주름 잡던 알프스의 별 레뷔파는 1952년 아이거 8등에 성공하면서 가장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혐오스런 곳이 아이거 북벽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아이거를 오르려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 마음의 준비 없이는 꿈을 이룰 수 없다. 정광식 또한 아이거 북벽에 출사표를 내면서 어쩌면 죽어서 돌아오지 못할 것에 대비해 사무실 책상까지 깨끗이 정돈하고 죽음의 준비를 한 뒤 북벽을 향해 떠났다. 그도 ‘무서운 계획이란 걸 알면서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클라이머로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아이거 북벽을 택하며 죽고 사는 문제는 오직 그들이 선택한 문제일 뿐이다. 이래서 그는 이 지옥의 벽에서 생환한 이후 필연적으로 『영광의 북벽』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는 말은 곧 그를 두고 이른 말 같다. 그는 갔지만 그가 남긴 『영광의 북벽』 『친구의 자일을 끊어라』 『등산 마운티니어링』은 그의 이름과 함께 한국등산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