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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죽의 장막 위로 솟은 산을 오르다
[신간 리뷰] 죽의 장막 위로 솟은 산을 오르다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8.04.0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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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등산사 장차이젠 지음 하루재클럽 펴냄

중국은 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로 세계적으로 이름난 고산이 수없이 분포된 지리적 조건을 갖춘 나라다. 세계최고봉 초모룽마(8848m)를 비롯하여 천산(天山) 산맥, 곤륜(崑崙) 산맥, 대설(大雪) 산맥, 카라코룸 산맥, 파미르 동부의 카슈카르 산맥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등산은 서구 선진국에 비해 늦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는 아마도 국민경제 수준이 낮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당의 대대적인 지원 덕에 급속도로 발전하여, 1960년엔 북릉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등 중국 등반대는 전 세계가 괄목할 성과를 이루었다.

초기 중국의 고산등반은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활동이던 자본주의 국가의 등산양식과 달리 일당체제 공산당이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가치를 찬양하기 위한 등반이었다는 점이 여타국가의 등반대와 차이를 보여준다. 즉 등산 분야도 체육활동의 일환으로 국가가 통제했다.

1975년 초모룽마(에베레스트)를 오른 중국대가 정상에 설치한 삼각대
1975년 초모룽마(에베레스트)를 오른 중국대가 정상에 설치한 삼각대

중국 현대 등산의 탄생 및 초기 활동

중국 현대 등산역사(1955-1959년)는 세계 각국의 현대 등산역사보다 비교적 늦게 시작하였다.

중국은 1955년 중국·소련 합동등반대를 처음으로 결성한 이후부터 국제 등산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였다. 1956년에는 등반대를 결성하고 서안 인근에 있는 태백산(3767m) 등정에 성공하면서 등정을 목적으로 중국 내 산에 오르는 기록을 처음으로 세웠다.

같은 해 7월에 중국·소련 합동등반대가 무즈타그를 등정한 후부터 중국은 등산을 정식 체육 종목으로 인정하였고 이때부터 중국 현대 등산 역사가 열렸다.

중국 현대 등산 초기 발전기에는 소련 등반대의 기술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국 노총은 소련의 요청에 따라 쉬징, 스시우, 저우정, 양더위안 4인을 소련으로 파견하여 카프카스 등산캠프에서 각종 기술훈련과 교육을 습득하였다. 1950년대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등산 활동을 시작한 초기 단계였다. 이 시기 중국 등반대는 소련 등반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국 노총 등반대는 1957년 6월 13일에 쓰촨성 서부에 있는 험준하기로 악명 높은 공가산(貢嘎山, Mt. Gongga, 7556m)을 등정한다. 이는 중국 등반역사상 소련의 도움 없이 이루어낸 최초의 등정일 뿐 아니라 해발 7500m 이상 고산에 처음으로 오른 등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중국은 공가산 등정 성공을 계기로 등산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을 뿐 아니라 당시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최고 기록을 뛰어넘으면서 세계 등산계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의 현대 등산은 공가산 등정 사례를 지표로 삼아 새로운 발전기에 접어든다.

중국대가 설치한 세컨드 스텝의 알루미늄 사다리
중국대가 설치한 세컨드 스텝의 알루미늄 사다리

세계 선진대열에 진입한 초모룽마(珠穆朗玛) 북릉 초등

1960년 5월 25일 왕푸저우, 취인화, 공뽀는 마침내 중국인 최초로 초모룽마 정상에 선다. 이들은 서양등반가들보다는 기술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체력이나 용감성으로 따진다면 최고의 히말라야 등반가들이었다.

그들이 정상에 이르는 과정에서 악전고투한 곳은 해발 8680m 지점에 위치한 4m 높이의 암벽 세컨드 스텝이었다. 이곳을 돌파하기 위해서 인간사다리를 만들어 올랐다. 취인화는 등산화를 벗고 동료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암벽에 피톤 몇 개를 박고 올라갔다. 고작 4m 높이의 암벽을 오르는데 무려 3시간을 써버렸다. 세컨드 스텝은 그동안 영국 팀이 여러 차례 실패한 곳이다.

공뽀는 배낭에서 오성홍기와 마오쩌둥 반신상을 꺼낸 뒤, 국기로 조각상을 감싸고는 정상에 세워두었다. 대원들은 사진기를 가지고 왔지만 시간이 너무 이른 새벽이라 사방이 어두워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오른 모습과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찍을 수 없었다.

대원들은 정상에서 약 15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하산하였다. 이날 세 사람이 이룩한 쾌거는 신 중국설립 후 근대등산이 시작된 지 5년 만에 얻은 성과였다. 이후 등정자 세 사람은 국가 체육위원회가 수여하는 스포츠영웅 자격을 받는다.

중국이 초모룽마(珠穆朗玛) 북릉을 초등했을 때만해도 서구의 선진 등산국가들은 중국의 등정결과에 반신반의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등반대는 등산 지식이 높지 않은 편이었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를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라며 놀라워하였다. 등반 새내기 국가가 이런 일을 해냈으니 전 세계가 경천동지할만한 일이었다.

소련 등산계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아발라코프는 “중국은 등반을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초모룽마 등정이라는 몹시 어려운 과제를 단번에 해결하였으니 대단한 일이며, 북릉을 거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일은 등반 역사상 처음이다”라고 호평하였다.

이 원정에서 부대장 쉬징은 외국의 사례를 들어 중국 원정대의 업적을 다음처럼 비교하며 자찬하였다.

“다른 나라 등반가들은 100여 년이 걸려서야 초모룽마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국은 원정대를 조직한 지 5년도 채 안 되었지만 단숨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제 막 첫 발을 내디딘 결과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는 에베레스트 산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영국이 1852년 이 산을 처음 발견한 때로부터 1953년 초등이 될 때까지 100년이 걸린 역사적 사실을 자기들의 성과와 비교한 자찬에 가까운 말이었다.

영국 《타임스》도 ‘왕푸저우, 취인화와 공뽀는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눈을 밟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사람이 오를 수 없다고 여긴 북릉을 통해 올랐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라고 호평하였다.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장 네이선은 “중국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소식은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중국 등반가들의 탁월한 기술과 용기에 깊이 탄복하였다. 이는 등산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크나큰 업적이고 성취이다”라고 축하하였다.

또한 중국 원정대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산을 정복한 영웅이다. 그들의 업적은 천하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라고 칭송하였다. 이렇듯 세계 언론계와 체육계는 중국 원정대의 성취에 관심을 모았다.

 

마지막 8천 미터 시샤팡마 초등

중국 등반대가 초모룽마에 오른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은 1964년, 중국은 해발 8000m가 넘는 산 중 유일하게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는 시샤팡마(Shishapangma, 8027m)를 초등한다.

중국은 시샤팡마 등반을 계기로 중국 등산계의 실력과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자 했다.

당시 히말라야산맥에서 해발 8000m가 넘는 14봉은 대부분 등반가에게 정상을 내어주었으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은 시샤팡마 밖에 없었다. 중국 등반대는 최초로 이 산을 등정한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었다.

중국대의 시샤팡마 초등은 일본의 마나슬루 초등에 뒤이은 아시아권의 국가가 이룩한 2번째의 초등이다. 이 무렵 세계 등산계는 ‘사람의 힘으로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기존의 등반 루트에서 벗어나 더 어려운 루트를 오르고 거벽 등반을 추구하는 등로 주의로 전환하는 추세였다. 중국 등산계 역시 고산등정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국제정세에 합류했다.

 

북동릉으로 정상에 오른 최초의 여성 판톡(潘多)

1975년 봄 중국 원정대(대장 스찬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을 동원 북동릉 상의 4m수직 암벽 세컨드스텝에 알루미늄 소재의 사다리를 가설(1960년의 원정에서는 인간사다리를 만들어 오른 구간)하고 공격대원 9명이 정상등정에 성공한다.

현재 북릉으로 등반하는 모든 원정대는 중국이 가설한 알루미늄 사다리를 쓰고 있다. 그들은 1960년의 등정에서 정상사진을 확보하지 못해 세계 산악계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지만 1975년의 등정에서는 그 증거로 정상에 측량용 금속삼각대를 세운다.

등정자 중에는 티베트 출신 여성대원 판톡(Phantog.潘多)도 있었다. 그녀는 일본여성 다베이 준코보다 11일 늦게 정상에 올라 두 번째 여성 등정자가 되었지만 북면 여성 초등자로 기록된다.

 

중국의 암벽등반

1986년 9월 6일에 북경 회유에서 중국 등산운동 탄생 30주년 기념행사와 북경 등산훈련기지 개막식이 동시에 열렸다. 이때부터 중국 암벽등반은 첫걸음을 내디뎠다. 1987년 10월에는 중국에서 제1회 국제 암벽등반 초청 경기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암벽등반 대회를 네 차례 진행하는 등 중국 암벽등반계가 발전기에 접어들었다.

최근엔 칭다오(靑島) 지역의 노산과 얼릉산(二龍山), 황산고, 계림 지역의 양수오 등에서 암벽등반 붐이 조성되고 있다. 1991년부터 이 지역에서 사업을 하던 김상일씨(양정산악회)와 한국의 코오롱등산학교가 노산지역의 암벽루트들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멀티피치 등반에 대한 붐을 일으켰다.

 

개혁개방 시기 등산의 대중화

국가 체육위원회와 중국 등산협회는 대중에게 등산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스잔춘은 1984년 중국 등산협회 연례회의에서 전문 등반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일상생활에서 등산을 즐길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산에 오르며 자국 영토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해서 중국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교육의 장 역할을 하자는 취지였다.

그동안 중국은 노동조합과 고등교육기관 등 각계각층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등산의 대중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지원했다. 중국이 체육사업의 일환으로 등산을 장려하는 것은 국경수비를 하는 군인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10억여 중국인의 평화를 지키듯이 등산을 스포츠분야에 적용한다면 내 몸 하나를 희생하여 10억이 넘는 중국인을 고무시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