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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보닝턴 “산은 내 모든 열정을 바쳐 사랑하는 대상”
크리스 보닝턴 “산은 내 모든 열정을 바쳐 사랑하는 대상”
  • 곽정혜 기자
  • 승인 2018.09.0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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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로 선정
7일(금), 기자회견 및 핸드프린팅 행사 가져
8일 특별 강연, 9일 영화 '크리스 보닝턴-산악인' 상영
돌로미테 등반 때 썼던 해머를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크리스 보닝턴 경. 지난 2007년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산악인이자 ‘알피니즘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크리스 보닝턴 경(Sir Chris Bonington, 84)이 한국을 찾았다. 그의 방한은 지난 2007년 이후 두 번째로,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수여하는 ‘2018 산악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이루어졌다.

7월 7일(금) 오후 1시부터 영남알프스 산악문화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선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위원장(울주군수)은 “세계적인 산악인 옆에 서게 되어 영광”이라며 “울주의 자랑인 영남알프스를 마음껏 보고 즐기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의미를 담아 영남알프스 전경이 담긴 액자를 선물로 전달했다.

선물교환 뒤 기념촬영. 왼쪽부터 이선호 울주군수, 크리스 보닝턴, 배창호 위원장

 

보닝턴 경은 “울주에 오게 되어서 기쁘고, 한국인들 환대에 감사드린다. 선물로 주신 사진은 내 사무실에 걸어놓고 오랫동안 음미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어 그가 1950년대부터 사용했으며, 특히 돌로미테 치마그란데 북벽을 디렛티시마(직등)로 오를 때도 함께 했던 록 해머를 영화제 측에 선물로 주었다.

이어진 모두 발언에서 보닝턴 경은 “다시 한 번 한국에 오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공항에서의 환대도 고마웠고, 고속열차(KTX)를 타고 울산으로 온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열차를 타보니 한국인들의 추진력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울주영화제 운영을 보면서 한국사회가 얼마나 깊은 포용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무료로 산악영화를 즐길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어떻게 교류가 이루어질지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하루재클럽에서 나온 신간 <ASCENT>에 사인하고 기념촬영한 보닝턴과 배창호 위원장.

 

Q. 오거(Ogre) 및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에 대해 말해 달라.

A. 1977년 더그 스콧과 함께 오거를 등정한 뒤 하산 중에 겪은 사고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였다. 더그 스콧이 첫 번째 하강에서 다리가 부러졌고,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5일 동안 굶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 둘 다 살아서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성공 이후, 이 봉우리는 20년 후에 20번 이상의 시도 후에야 재등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오거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 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에베레스트에서는 오거와 다른 경험을 했다. 처음에 대규모로 갔을 땐 성공을 못했지만, 2년 뒤 소규모로 가서 성공했다. 첫 원정 때는 성공을 위해선 대규모 원정대가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물자운송 등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팀워크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대원들은 이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동료들이 산에서 떠났다. 2020년에 45주년을 맞는데, 그때 큰 파티를 열어 기념할 것이다.(웃음)

 

Q. 알피니즘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A. 최근의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은 대규모에서 소규모의 알파인스타일로 가고 있다. 산 아래에서 짐을 싸서 고정로프나 포터 없이,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며칠이고 등반을 계속 하는 것을 순수한 알파인스타일이라고 말한다. 현재 알파인스타일로 등반을 하고 있는 등반가들이 전세계적으로 많이 있고, 그들은 점점 더 극한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엘리트 산악인들의 야망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장비나 의류, 식량 또한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고, 앞으로 더 극한의 등반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Q. 80세에 ‘올드맨 오브 호이’ 등반한 건 어떤 의미가 있나?

A. 나는 항상 클라이밍의 감각을 사랑했고, 그것이 내가 평생 동안 등반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국 각지의 많은 암벽을 올랐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암벽, 산, 자연을 보면서 길을 찾고 탐험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함께 등반하는 동료(파트너)들과의 관계도 소중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클라이밍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변했다. 한창이던 40대에는 다소 경쟁적이고 공격적으로 등반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포용력이 생겼다.

‘올드맨 오브 호이(Old man of Hoy)’는 60년대 초, 내 기량이 절정일 때 올라간 적이 있다. 80세가 되었을 때 리오 홀딩이 함께 올라가자고 해서 갔는데, 그가 확보를 든든하게 해줘서 무척 고마웠다.(웃음) 예전보다 내가 오를 수 있는 고도는 낮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클라이밍을 좋아한다.

 

Q. 알피니즘(Apinism)은 서구적인 개념 아닌가?

A. 알피니즘을 단순화해서 단지 ‘서구적이다’라고만 정의하기는 힘들다. 동양에나 서양에나 ‘정복’의 개념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클라이머라면 기본적으로 산을 사랑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나는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히말라야 상업등반대 성행이나 최근 변화하고 있는 네팔 셰르파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진정한 산악인이라면 셰르파들과 우정을 나눌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1960년에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 처음으로 네팔에 갔다. 당시 만난 셰르파들과 오래 우정을 이어갔고, 그들과 몇몇 중요한 등반을 함께 했다. 셰르파들과 원정대원들이 협조해서 등반을 원만하게 해낸 원정이 좋은 등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많은 등반가들은 대개 셰르파들의 위대함을 인정하지만, 일부는 자존심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날은 셰르파가 가이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가 갔던 등반은 달랐다. 항상 대원들과 셰르파가 힘을 합쳐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Q.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좀 더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안에 대하 조언 한 마디.

A. 영화제로서의 명성을 쌓아나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트렌토 산악영화제는 60년 이상, 밴프산악영화제는 20년 이상의 노력과 열정을 필요로했다. 울주영화제가 3회 만에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간이 더 쌓이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등반가로서의 삶과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삶 사이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A. 나는 운이 무척 좋았다. 첫 아내 웬디(2014년 사별)는 내가 무척이나 극한등반을 하던 20대에 만났는데, 내가 어떤 등반을 해왔고 또 원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언제나 100% 지지를 해주었다. 당시 1년에 6개월은 클라이밍을 하고 강연을 다니느라 집을 떠나있었지만, 웬디는 항상 나를 지지했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탐험가들이 직면하는 문제이자 답이 없는 문제가 있다. ‘어떻게 배우자를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행위를 할 수 있는가? 아이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방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 역시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모른다. 모험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말이 없다.

 

Q. 당신에게 있어 ‘산’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A. (그는 한동안 목이 메어 대답을 잇지 못했다) …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열정으로 사랑하는 그 무엇이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1시간이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핸드프린팅과 포토타임 시간을 가졌다.

한편 세계산악문화상 시상식은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개막식 중 진행되며, 8일(토) 특별 강연과 9일(일) 영화 <크리스 보닝턴-산악인> 상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