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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전설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나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8.09.1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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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보닝턴 자서전 『Ascent』

 

『Ascent』 크리스 보닝턴 지음/오세인 옮김/ 2018 하루재클럽

영국 알피니즘의 살아있는 전설 크리스천 존 스토리 보닝턴(Christian John Storey Bonington, 이하 보닝턴)의 자서전 『Ascent』가 그의 방한에 맞추어 출간되었다. 보닝턴은 그동안 15권의 책을 펴냈지만 국내에 소개된 역서는 『퀘스트(Quest) 2004』뿐이었다. 그후 『퀘스트』는 제호만 『도전(Challenge) 2012』으로 바꾸어 재출간한바 있다.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산 좋아 출세한 놈 없다”라는 조롱 섞인 농담을 즐겨하지만, 이 말이 무색하리만치 산을 잘타 신분이 상승한 보통사람들도 있다.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 산 잘타는 보통사람이 기사작위를 받고 신분이 상승한 일은 흔치 않다.

에베레스트 초등정을 성사시킨 존 헌트와 에드먼드 힐러리가가 그랬고, 데이빗 스털링과 크리스 보닝턴이 산 잘 타서 작위를 받고 출세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생존한 사람은 보닝턴뿐이니 그를 살아있는 전설이라 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1996년 등반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와 대영제국 3등급훈장(CBE)을 받았다.

올드맨 오브 호이 루트 개념도. 사진 핀터레스트
올드맨 오브 호이 루트 개념도. 사진 핀터레스트

이 책 첫머리의 여는 글 ‘올드 맨’은 영국 펜트랜드 만(灣)에 솟아있는 137미터의 사암 돌기둥 올드맨 오브 호이(Old Man of Hoy)를 말한다. 이 돌기둥은 1966년에 32세의 보닝턴이 초등했으며 48년이 지난 80세에 손자 또래의 클라이머 레오 홀딩과 함께 재등했다. 레오 홀딩은 11세에 그곳을 올라 최연소 등반 기록을 지닌 클라이머다. 최고령과 최연소가 줄을 함께 묶은 세대를 넘어선 등반이었다. 이 때의 상황은 영국의 BBC가 현장중계를 하여 노익장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이 등반에서 언론이 의도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악한 산을 오르며 일생을 살아온 한 등반가가 노년에 이르러서도 등반에 대한 열정이 돌기둥처럼 우뚝 서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리카르도 카신이 초등 50주년 기념으로 79세에 피츠바딜레를 재등한 등반에 비견할 만한 일대 사건이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기간 한국을 찾은 크리스 보닝턴과 필자.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기간 한국을 찾은 크리스 보닝턴과 필자.

그는 16세부터 등반을 시작하여 1950년대 영국등산계의 우상처럼 알려진 걸출한 등반가 조브라운과 영국 암벽등반의 새 지평을 연 돈 윌란스가 웨일스 등지에 개척한 수많은 루트를 섭렵하며 등반수업을 한다. 이때만 해도 PA암벽화가 처음 나왔을 때고 확보장비가 마땅치 않아 주머니 속에 비상으로 작은 돌을 넣고 다니면서 크랙에 끼워 넣어 확보를 하던, 조 브라운이 완성한 이런 방식이 성행하던 시대였다.

그가 1958년 영국인 최초로 프티 드류 남서 필라를 돈 윌런스와 함께 오를 때 자신감 넘치는 윌런스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공포라는 것은 자신이 행동을 통해 줄이거나 쫒아낼 수 있다”는 것이 윌런스의 지론이었으며, 이런 교훈을 가르쳐준 그가 고맙다고 했지만 이후 두 사람사이의 파트너 십은 무너졌다. 1975년 보닝턴이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에서 보닝턴은 윌런스를 제외시켰기 때문에 그는 마음이 상했고, 두 사람 사이는 소원해졌다.

등산에서 필연적인 요소는 자기 만족감이며, 남이 오른 정상과 길은 가지 않는다.

보닝턴은 이제까지 감히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굵직한 등반을 감행하여 세계 등반사를 새롭게 쓴 인물이다. 그는 1960년 안나푸르나 2봉 원정에 참가한다. 이는 그가 해낸 첫 번째 히말라야 등반이다. 1970년 안나푸르나 남벽을 뚫고 올라 히말라야 최초로 거벽등반시대의 문을 열었으며. 뒤이어 1975년에는 세계 최고 최난(最難)의 장벽이라 일컫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올라 고산거벽등반의 탁월한 전술가로 인정받는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은 포위전술 방식의 최고수위를 기록한 등반으로 평가 받는다. 산에서 능숙한 전략을 구사하는 그의 저력은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졸업 후 왕립 탱크연대 장교로 근무한 경력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때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놓고 영국 사람들은 영국의 혈손이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고 말했다. 1953년의 초등정은 뉴질랜드의 힐러리가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등산에서 필연적인 요소는 자기 만족감이며, 남이 오른 정상과 길은 가지 않는다”라는 소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러 명의 동료들을 잃었다. 그래서 “사람 잡는 원정 대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조태스커, 피터 보드맨, 닉 에스코트, 마이크 버크 등 쟁쟁한 산꾼들이 보닝턴과 등반 중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르던 8명 중 4명이 산에서 죽었고, 콩구르에 오른 4명 중 30년 이상 생존한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했다. 그만큼 그의 등반은 모두가 어렵고 극적이었다.

그의 도전은 그칠 줄 모른다. 영국은 히말라야 등반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보닝턴이 그런 전통의 많은 부분을 세웠다. 그는 15회 이상 매번 원정을 떠나 괄목할 만한 등반을 한 사람이다.

보닝턴의 등반인생 중에서 가장 극적인 등반을 감행한 것은 1977년에 있었던 오거 초등정이다. 그는 부상을 입고 굶주린 상태에서 죽음과 맞서 사투를 벌이면서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아무도 오르지 않은 공포의 산 오거(Ogre 7285m)를 더그 스콧과 함께 목숨을 걸고 오르는 모험을 감행한다. 영국 동화에 등장하는 오거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이 산명은 1892년 카라코람에 처음 들어간 영국의 마틴 콘웨이 경이 붙인 이름이다. 그곳 원주민들은 바인타브락이라 부른다.

지난 30년간 30개의 등반대가 이 산에 도전했지만 두 팀만이 성공했으며 초등 후 재등에 성공하기까지는 25년이나 걸렸다. 이 난공불락의 요새는 인수봉의 25배 높이를 지녔으며 화강암 절벽만 2500미터에 이르는 산이다. 이 산의 첫 등정자인 보닝턴과 스콧은 해질녘에 정상에 올라 로프 하강을 한다. 스콧이 크램폰을 벗은 채로 하강하던 중 바위에 붙은 박빙(薄氷. 살얼음)을 밟고 미끄러지면서 바위와 충돌, 우지직 소리를 내며 두 발목이 부러졌고 보닝턴마저도 갈비뼈 세 개와 손목일부가 부러지고 폐렴에 걸린다.

캄캄한 밤에 두 사람은 7300미터 고도에 고립되었다. 그들과 전진캠프 사이에는 3000미터의 험악한 바위 지대가 가로막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상마저 악화하여 5일 동안 폭풍을 뚫고 4일간 굶주린 채 땅을 향해 기어서 8일 만에 악몽 같은 하산을 끝내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온다. 눈과 빙하의 딱딱한 얼음 위를 손과 무릎으로 짐승처럼 기어 내려온 스콧의 무릎은 찢겨지고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이들을 맞이한 베이스캠프는 텅 빈 채 아무도 없었다.

“한명이라도 돌아와 이 메모를 보기 바란다”라는 짤막한 쪽지만 남겨져있었다. 이들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원주민 마을로 구조에 필요한 사람들을 구하러 철수했기 때문이다.

그의 등반에는 항상 언론과 대중이라는 관객이 필요했다. 그는 알피니즘의 순수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하려고 하지만...

보닝턴은 여러모로 평균적인 보통사람이다. 등산 활동 외에도 랭캐스터 대학 총장, 보도 기자 겸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영국을 대표하는 등산용품 제조업체 버그하우스의 비상임 회장으로 있으면서 TV나 방송에 출연하고 잡지, 신문 등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그가 이룩한 성취들은 탁월한 능력보다는 꾸준한 결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찾은 크리스보닝턴과 그의 새 아내 로레토.
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찾은 크리스보닝턴과 그의 새 아내 로레토.

그는 등산의 세계에서도 조브라운이나 돈 윌런스, 매키네스와 같이 걸출한 클라이머는 아니지만 진실어린 열정으로 원정 자금을 마련하고 생계를 위해 기업과 언론을 잘 활용한 사람으로 그의 등반에는 항상 언론과 대중이라는 관객이 필요했다. 그는 알피니즘의 순수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하려고 하지만 일부는 이런 점이 알피니즘의 순수성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문제는 자서전을 읽은 독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어머니와 외조모의 애정과 영향권에서 성장했다. 평생의 반려였던 첫 번째 부인 웬디와 사별 후 상실감에 빠져있던 중 새로운 사랑 로레토와 재혼한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올드맨 오브 호이를 오르는 열정과 투혼으로 최선을 다해 인생의 불꽃을 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