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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기의 역사-감지손과 제동손은 변하지 않았다
하강기의 역사-감지손과 제동손은 변하지 않았다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8.09.1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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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의 역사는 알피니즘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알프스와 같은 곳을 처음 가서 당혹스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확보’와 함께 바로 ‘하강’인데, 실상 알파인 지대에서 산을 내려올 때 하강을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자기확보 또한 겔렌데와 같이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 위에만 머무를 수도 없는 일, 대부분의 클래식한 알파인 루트들은 오른 길로 내려오거나, 아니면 초등 루트와 같은 쉬운 길로 돌아 하산하게 되어있다. 하강보다는 오히려 다운 클라이밍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에게 하산이 어려운 이유는 알프스보다 미국식 등반법, 즉 요세미티와 같은 바위절벽에서의 암벽등반에 익숙해왔기 때문이다. 클라이머들은 산악회에 들어가건 등산학교에 가건 하강법을 먼저 배운다. 하지만 1940년대만 해도 인수봉에서조차 하강은 드문 일이었다. 산악계 원로인 고 안광옥 선생은 인터뷰에서 “해방 전 인수봉을 등반할 땐 선배들이 내려오는 기술도 똑같이 알아야 한다고 해 A코스로 오른 후 그리로 다시 내려왔으며 후미엔 가장 실력이 좋은 선배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서면 하강코스의 피톤들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돌로미테의 맹주 치마 그란데
돌로미테의 맹주 치마 그란데

알프스에서 하강기술이 시작된 계기는 철의 시대에 접어들어 보다 가파르고 험난한 벽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부터로 본다. 특히 서부 알프스의 만년설지대와는 달리 중앙의 돌로미테 지역은 대부분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클라이밍 다운보다는 장비를 이용하는 등반기술이 필연적이었다.

한스 듈퍼
한스 듈퍼

압자일렌 또는 S자 하강이라고 하는, 몸과 로프의 마찰력을 이용하는 하강기술이 돌로미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방법을 응용한 사람이 한스 듈퍼(1893~1915)였다. 듈퍼 이전의 하강 방법이란 손으로 로프를 잡고 내려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당연히 하강에 따르는 위험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앞서 말한 하강방식을 ‘듈퍼식 하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실상 듈퍼는 이처럼 몸에 로프를 두르는 기술을 하강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도 허벅지와 어깨에 로프를 둘러 몸을 고정시키고 펜듈럼 해 다음 홀드를 찾는, 즉 등반의 기술로써 더 많이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발명한 이 단순한 기술이 오랫동안 각광받아온 것은 그전에 비해 빠른 속도와 안정적인 하강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돌로미테에서부터 발달한 하강기술

하강기구의 발달은 로프의 발달과 그 맥을 같이한다. 초기 마닐라삼으로 만든 로프는 강도를 위해 대체로 최고 13~15mm에 이르는 굵기였다. 때문에 몸에 두르더라도 지금보다는 그 고통이 덜했으며 또한 제동을 할 때 손으로 움켜쥐기에도 편했다. 또한 그에 맞는 하강기구를 만들기엔 무게와 부피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며 안전벨트조차 없는 상황에서 하강기구를 몸에 매달 시스템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에 듈퍼가 발명한 하강법은 이후 수십 년간 클라이머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되었다. 여기에 훗날 ‘러시아식’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진, 로프의 마찰력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들 또한 하강 중 사용되었다.

그 방법들을 일일이 다 열거하기는 어려우나 공통점은 ‘마찰력’이라는 데에 있다. 로프와 거기 매달린 몸 또는 물체 사이의 닿는 면적을 넓혀 마찰력을 이용, 최대한 떨어지는 속도를 낮추는 데에 하강기구의 모든 기술이 시작되는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하강기는 선후등자를 확보하는 데에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스티치 플레이트
스티치 플레이트

많은 이들이 8자 하강기의 단순한 구조 때문인지 가장 오래된 하강기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론 그 역사가 40여 년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미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하강기는 ‘스티치 플레이트’라고 하는, 두꺼운 알루미늄 판에 길쭉한 구멍이 하나 뚫린 기구나 ‘브레이크 바’라고 불리던 카라비너에 끼우는 작은 막대였다.

브레이크 바를 개량해 1970년대 샬레모제 사에서 시판되었던 하강기
브레이크 바를 개량해 1970년대 샬레모제 사에서 시판되었던 하강기

스티치 플레이트는 구멍에 로프를 접어 끼우고 나온 고리에 카라비너를 걸어 로프가 두 번 꺾이게 해 마찰력을 발생시키는 구조이며, 브레이크 바 또한 로프의 꺾임을 이용해 마찰력을 높이는 구조로, 이 두 가지 원형은 이후 개량되는 하강·확보기의 큰 틀을 마련한다. 스티치 플레이트는 훗날 지금과 같은 튜브형 하강기로, 브레이크 바는 콩보나티의 ‘로버트 하강기’나 살레와의 ‘가이드’와 같은 장비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스티치 플레이트의 구멍이 하나인 것은 빌레이 전용으로, 두 개인 것은 더블로프나 하강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국내에 이 장비가 들어왔을 때 많은 산악인들은 그 생긴 모양을 빗대 ‘돼지코’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하지만 실상 스티치 플레이트로 하강을 하는 건 그다지 편리하지만은 않았다. 그때까지도 로프가 두꺼웠던 탓에 체중을 실어도 부드럽게 빠져나가지 않아 차라리 기존과 같은 방식의 하강이 사람들에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살레와(Salewa)에서 출시한 스프링이 달린 스티치 플레이트의 사용설명서에 따르면, 선박용 꼰 로프로 등반에서도 각광받았던 골드라인 로프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석이 달려있다. 이미 로프들이 나일론으로 넘어오고 난 상태에서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앞선 불편 때문에 하강에서는 브레이크 바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 카라비너 두 개로도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 굳이 장비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몸에 지닌 장비를 응용하는 클라이머들도 많았다.

 

모든 하강기는 마찰력을 이용하는 공통점 있어

데상드르 알랭
데상드르 알랭

한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8자 하강기는 그 유래를 데상드르 알랭이라는 장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 클라이머이자 장비개발자인 피에르 알랭은 하강기 말고도 지금 우리가 신는 바닥이 평평한 모양의 암벽화를 처음 고안하기도 했고, 최초로 알루미늄 합금으로 된 카라비너를 만들기도 한 장본인이다. 리오넬 테레이, 루이 나슈날, 가스통 레뷔파 등과 활동하며 샤모니 푸(Fou) 남서릉과 드류(Dru) 북벽을 초등하고 가셔브룸1봉을 원정하는 등 당대에 괄목할만한 등반을 한 그는, 파리 인근의 퐁텐블루 암장에서 고난이도 볼더 등을 등반하며 60년대 초 등반대회를 열어 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 개념을 산악계에 처음 도입한 인물로도 꼽힌다.

그가 1940년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데상드르 알랭(Descendeur Allain)은 카라비너 홀을 통해 몸과의 연결을 빼지 않고도 단순히 로프를 기구에 감는 것만으로 마찰력을 발생시켜 하강할 수 있게 만든 장비다. 하지만 삼지창 모양으로 된 데상드르 알랭은 로프가 기구에서 이탈될 위험이 있어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훗날 이를 개량해 로프가 빠지지 않는 8자 하강기가 탄생하게 된다.

8자 하강기
8자 하강기

70년대판 <등산기술백과>에는 8자 하강기가 ‘슈스터 고리’라는 이름으로도 나와 있다. ‘슈스터(Schuster)’란 독일어로 버섯이라는 뜻으로, 서양인들의 눈에는 그 모양새가 버섯으로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8자 하강기는 이를 실용화 한 각 브랜드에 따라 유사한 모양의 데상드르 퍼머, 데상드르 톱, 데상드르 마뇨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기도 했다. 또한 초기 8자 하강기는 강철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가볍고 튼튼한 ‘알루미늄7075’라는 소재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두 구멍을 잡아당겼을 때 파괴되는 강도는 3~5톤에 달해 자동차를 매달아 끌어올려도 될 정도다.

 

자동확보기와 하강보조기구의 등장

스티치 플레이트건 브레이크 바이건, 8자 하강기이건 그 원리는 같지만 셋 모두의 단점은 바로 ‘열’에 있다. 마찰력이 클수록 그로 인한 마찰열이 발생해 고스란히 로프와 하강기 사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때문에 하강거리가 길수록 로프의 마모도 심해지며 하강기 또한 뜨거워져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수직의 절벽에서 뜨거운 하강기를 사용하는 건 또 하나의 위험을 높이는 일일 수밖에 없고 또한 장비의 내구성에 있어서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장비개발자들은 이 ‘열’을 발산하는 데에 기술을 집중했다. 미국의 제프로우가 개발한 ‘튜브’는 스티치 플레이트를 개량해 하강시 보다 로프가 잘 빠지도록 꺾이는 각도를 완만히 했으며, 또한 하강기에 전달되는 열을 발산하기 위해 방열효과를 낼 수 있는 홈을 냈다.

로보트 하강기
로보트 하강기

브레이크 바를 개량한 로보트 하강기 또한 로프가 닿는 면적을 넓혀 하강 효과를 부드럽게 한 한편 열이 잘 발산되도록 한 설계이다. 8자 하강기는 훗날 페츨사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손잡이가 달린 제품이 출시되거나, 알루미늄보다 열전도율이 낮은 세라믹 소재로 된 제품이 나오는 등의 개량이 있어왔다.

그리그리
그리그리

또한 만일에 있을 사람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로프를 놓치더라도 자동으로 제동이 되는 장비는 캠과 스프링을 이용한 페츨사의 그리그리가 가장 성공사례로 꼽힌다. 이후 이와 유사한 제품들이 각 브랜드에서 출시되고 있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장비들은 두 줄 하강에서는 쓸 수 없어 그 한계가 분명하다. 하강에서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는 고전적인 방식의 프루지크 매듭을 이용한 백업 방법 외에 두 손을 모두 놓아도 제자리에 머물 수 있도록 션트라고 하는 보조기구를 이용하는 것으로도 발전했다.

하지만 이런 하강기구의 발전은 온전히 산악사의 발전에만 기대어 설명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산업과 군사분야의 고공작업이 요구되며 함께 연구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발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감지손’과 ‘제동손’, 즉 모든 안전은 결국 사용자의 몫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