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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60개국 등반 중 성폭력·성추행 심각
서양 60개국 등반 중 성폭력·성추행 심각
  • 오영훈 미국통신원
  • 승인 2018.09.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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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2명 당 1명, 남성 6명 당 1명 꼴

미국 <알피니스트>지가 지난 8월 ‘등반의 성희롱·성폭력 보고서’를 발간해 화제다. 4월부터 6월까지 6주간 대대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다. 

등반 관련 활동 중의 성희롱·성폭력 경험을 묻는 본 설문조사에는 미국, 호주(이상 영어), 멕시코(스페인어) 3개국에 기반을 둔 웹사이트, SNS를 통해, 세계 60개국에서 5339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설문조사 참가자 거주 국가. 이미지 [알피니스트]
설문조사 참가자 거주 국가. 이미지 [알피니스트]

설문조사 참가자 중 70퍼센트는 미국인이었고 이외에 캐나다, 호주, 멕시코, 영국 등에서도 참여했다. 남녀가 거의 각각 절반을 차지했다.

등반경험으로 볼 때 평균 10년의 경력이 있었다. 등반활동별로는 실내암장(83%), 스포츠클라이밍(73%), 전통등반(55%), 볼더링(39%), 고산등반(27%), 빙벽등반(17%)의 순이었다.

설문조사 참가자의 등반 유형. 이미지 [알피니스트]
설문조사 참가자의 등반 유형. 이미지 [알피니스트]

‘원하지 않은 접촉이나 억지 키스 등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성 47퍼센트, 남성 16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남성들은 주로 노상 성희롱과 성추행에, 여성들은 언어폭력, 성희롱, 성추행, 따라옴 등을 겪었다고 보고했다.

여성 2명 중 1명, 남성 6명 중 1명이 등반관련 활동 중 성폭력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이미지 [알피니스트]
여성 2명 중 1명, 남성 6명 중 1명이 등반관련 활동 중 성폭력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이미지 [알피니스트]

그리고 남녀 각각 3퍼센트 정도는 다른 등반가 혹은 등반관련 활동 중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 더 스스로가 위험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성폭력이 벌어지는 상황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원정등반 도중에는 주로 혼자 있는 텐트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집, 친구의 집도 성폭력 장소로 보고됐다.

가해자는 전문 산악인, 친구, 지인, 등반동료, 실내암장 회원, 거래처 직원, 직장동료, 상인, 고객, 낯선 사람 등 다양했다. 등산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고객 및 동료직원으로부터 언어폭력, 성희롱, 성추행 등을 당한다고 한다.

유형별·성별로 본 성폭력 실태. 이미지 [알피니스트]
유형별·성별로 본 성폭력 실태. 이미지 [알피니스트]

이외에 온라인에서도 벌어지는데, SNS 계정을 통해 성희롱을 일삼기도 하고 SNS 사진을 가져다가 포르노사이트에 실명과 함께 게재하는 일도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런 성폭력·성추행의 경험이 등반가 집단 내에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또한 문제를 증폭시킨다고도 했다.

성폭력의 경험을 다른 여성 동료에게 털어놓자 “싱글이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산악회의 여성회장에게 보고하니 “여긴 어쩔 수 없어, 원래 그래”라는 등의 대답이 그와 같은 사례다.

이런 경우 성폭력·성추행은 타인들에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또 있더라도 정상적인 것처럼 비취게 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뿐만아니라 피해자는 이미 위험이 상존하는 등반의 환경에서 성폭력의 추가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에 경미한 성추행에도 정신적인 피해는 크게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폭력·성추행 경험자 중 여성 58퍼센트, 남성 21퍼센트는 이후 산악회나 등반모임 등에 참여하는 태도를 바꿨다고 진술했다. 등반 자체를 멀리하거나, 장거리 등반여행을 삼가고, 특정 사람들과만 등반하는 것으로 전향했다. 피해 여성들은 주로 여성들끼리만의 등반팀을 조직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이들은 성폭력·성추행을 보고했다는 이유로 산악회 모임에서 배제당했다고도 털어놨다. 

성차별주의 또한 큰 문제로 지적됐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매, 체중, 의상에 불쾌한 언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여성은 등반속도가 느리다든지 등반루트 설명을 해 주지 못한다든지 하는 차별적 언급 또한 지적됐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남성이 신체접촉까지 해 가며 등반동작을 일일이 지도하는 것도 잦은 현상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응답자 다수는 산악회 등 등반가 집단은 통상 사회일반에 비해 더 친절하고 덜 공격적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와 같은 설문조사를 종합하며 <알피니스트>는 '등반 공동체 내에서 성추행·성폭행은 분명히 현존하며 중대한 정도'라고 결론 내렸다.

이어 이런 문제를 방관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등반을 그만두고 나아가 등반 공동체 전체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으리라고 보았다.

대처 방법에 대한 제안도 눈길을 끈다. 성폭력이 벌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을 때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이 '4-D'의 방법으로 '간섭'하는 것이다.

1) 안전하다고 느낄 경우 직접(Direct) 개입해 중지시킨다.

2) 가해자의 관심을 끌거나 피해자를 데려감으로써 방해(Distract)한다.

3) 다른 중재자에게 얘기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여 중재(Delegate)한다.

4) 간섭하기에 너무 늦었을 경우(Delay), 피해자에게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는다.

개인을 떠나 산악회 등 조직 단위로 할 수 있는 대처법으로는 다음을 제안했다.

일단 예방이 최선이다. 조직 차원에서 성차별적이거나 조롱투의 농담, 낙서, 그림, 포스터, 이메일, 사진 등의 사용을 막는다.

조직 강령에 조항을 넣는 것도 전시효과가 크다. 성희롱·성폭력 발생 시 관련 조항을 조직 법규에 삽입하는 것도 좋다.

본 ‘등반의 성희롱·성폭력 보고서’는 설상스포츠 및 산악자전거 단체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유관 연구 및 정책구상에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다.

미국산악회(AAC), 미국 최대 아웃도어 물품 유통업체 REI, <아웃사이드> 등 관련 업체, 언론매체, 산악단체 등등 35개 단체가 지원하는 <세이프아웃사이드>라는 비영리 단체가 결성돼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시카고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 '용감한 여성들'(Courageous Girls). 등산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재활을 모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 '용감한 여성들'(Courageous Girls). 등산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재활을 모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