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1-16 23:43 (금)
치마 그란데 북벽 코미치 루트를 오르다
치마 그란데 북벽 코미치 루트를 오르다
  • 황의철 중앙대산악회, 협찬 쎄로또레
  • 승인 2018.09.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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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산악회 돌로미테 등반기
어프로치 중 만난 작은 교회당
어프로치 중 만난 작은 교회당

독일 뮌헨공항에서부터 코르티나 담페초까지 오는 길에 본 돌로미테 산군은 일단 크다는 단어가 먼저 다가온다. 전날 정찰등반을 할 때에도 “와~ 크다! 거대하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그 벽을 이제 오르는 일만 남았다.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 산군의 치마그란데(2,999m) 북벽 코미치 루트는 1933년 이탈리아 산악인 에밀리오 코미치에 의해 초등된 루트로 누구나 돌로미테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루트이며 우리 역시 계획 때부터 우선 목표로 세워놓은 코스이다.

등반선엔 오래된 하켄이 주로 설치되어 있고,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볼트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확보지점에는 두세 개의 하켄이 고작일 뿐이다. 가끔씩 나타나는 회수하지 못한 캠 장비는 반가운 단비와도 같다.

북벽으로 어프로치 중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북벽으로 어프로치 중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총 17피치로 구성되어 있는 코미치 루트는 전반적으로 수직에 가까운 직벽으로 등반라인은 좌우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직선에 가깝다. 8피치까지는 약간의 오버행도 있어 더욱 완력이 많이 필요한 곳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히 짐을 꾸리고 움직여 1피치 출발지점에 도착해서 등반준비를 마치니 6시 30분. 굳이 당일등반으로 끝내겠다는 목표 없이 애당초 비박을 염두에 둔 짐꾸리기이다 보니 배낭의 무게가 살짝 부담스럽긴 하다.

9피치를 등반 중인 김현경 대장
9피치를 등반 중인 김현경 대장

 

우리 앞에는 먼저 도착한 2명의 외국인 클라이머가 등반을 막 시작하는 중이다. 지나고 보니 이곳은 2명이 팀을 이루어 교차선등 방식으로 등반을 하는 것이 체력적인 면이나 속도면에서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4명이 한 팀을 이루어 등반을 하다 보니 꽤나 더디고 그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더구나 계속되는 직벽, 겪어보지 못한 암질,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벽... 절로 힘들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크게 난이도가 없는 1, 2피치이지만 직벽의 위용에 그만 팔에 힘을 과용하고 만다. 3피치는 짧은 직상크랙을 올라 좌측 슬링 쪽으로 트래버스한 후 우상향 크랙으로 오르는 코스인데 살짝 쫄았던 탓인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때까지는 아직 힘이 있을 때여서 그랬을 테고 6피치를 마칠 무렵 내 몸은 이미 바람 빠진 풍선마냥 힘이 쭉 빠져있다.

이렇게 힘이 부칠 줄은 몰랐다. 6피치까지 어떻게 올랐는지, 등반라인은 어땠는지 기억이 없다. 그동안 운동을 하면서 어느 정도 힘이 붙었다고 자신했었는데 이런 무기력함이라니... 배낭이 무거운가? 이런 직벽의 완력등반을 너무 힘에만 의존한 건가? 경험 미숙인가? 다양한 생각이 지나간다.

여러가지 확보물(우드하켄,촉스톤,하켄, 캠 등)
여러가지 확보물(우드하켄,촉스톤,하켄, 캠 등)

현경 형이 3피치까지 리딩하고 4피치부터는 현주가 선등으로 나섰다. 7피치부터는 분위기상 내 차례고, 또 다들 나를 쳐다본다. 현경 형은 손에 경련까지 나기 시작했나 보다. 힘이 빠져서 자신은 없는데 하면서 루트를 보며 장비를 챙겨본다. 에일리언 몇 개, 캠 작은 것, 중간 것 몇 개, 퀵드로, 슬링을 챙겨 출발. 직상 후 오른쪽 트래버스, 다시 직상하여 확보하면 된다. 밑에서 봤을 때는 오버행이지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힘이 부친다. 두 번째 하켄을 지나고부터는 홀드를 찾기도 버겁다. 그렇게 버거우니 설치를 더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준비한 장비는 많이 부족하다. 퀵 장비가 없으니 빠르게 설치가 안 되고 자꾸 시간을 끌게 된다. 속도가 더디면 더뎌질수록 힘은 더욱 많이 들어가고 그 만큼 지치고 힘이 빠진다. 중간에 매달려 쉬면서 나로 인해 더 등반속도가 느려지게 되니 미안한 마음이 더욱 크다.

12피치를 리딩 중인 최창학 대원
12피치를 리딩 중인 최창학 대원

미안하지만 8피치부터는 다시 현주에게 넘겼다. 현주도 힘들고 쥐도 난다고 토로하지만 결국은 톱으로 나선다. 현주는 오래전이지만 요세미테 등반 경험이 있어서인지 안정적으로 올라간다. 8피치만 끝나면 다소 쉬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9피치는 설치할 곳도 없이 거의 60m를 진행한다. 바위의 난이도 자체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여전히 벽은 서 있고 힘은 빠져있다. 설치할 곳도 없고 길이도 길다. 현주가 어거지로 설치한 티가 난다. 올라가다 보니 그냥 쑥 빠지는 확보물도 있다.

10피치까지 현주가 등반을 마치고 침니 구간인 11피치부터는 창학 형이 톱으로 나선다. 언제나 즐거운 등반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마라톤으로 다져진 체력, 등반기술에 대한 빠른 이해, 안정적인 등반능력과 필요할 때 적절한 조언 등 선배로서 언제나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신다. 시작할 때부터 침니는 본인이 톱을 선다고 하신 게 있어서인지 14피치까지 안정적으로 리딩을 한다. 분명히 자발적으로 톱을 서는데, 어떻게 보면 현주가 조율하는 대로 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17피치 완등 후 기념샷
17피치 완등 후 기념샷

3피치를 남겨 둔 테라스에 이상한 기운이 돈다. 내가 3번째로 등반을 했기 때문에 보통 내가 올라오면 톱은 보이지 않는 게 정석인데 다들 그냥 서 있다. 조용히 장비가 나에게 넘어왔다. 밑에서부터 낌새가 이상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받아드니 새삼 거시기(?)하다. 마음은 심란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모서리를 잡고 살짝 오른다. 좌측으로 밴드를 따라 25m 정도를 트래버스하는 구간인데 밴드 아래로는 완전 절벽이다. 족히 4~500m는 되는 아찔한 높이를 힐끗 보니, 별거 아님에도 심리적인 압박이 은근히 조여온다. 호흡을 가다듬고 조심조심 넘어간다. 8시쯤 되었는데 아직도 해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머지 2피치는 거의 오버행이라고 볼 수 있는 직벽을 직등하는 구간이다. 어둑해질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진다.

이 길이 맞는 건가? 하켄이 있을 법도 한데 왜 안보이지? 점점 주변의 시야도 희미해져간다. 16, 17피치는 쉽다고 생각해선지 하켄도 많지 않다. 그래도 직상해서 오르다 보면 반가운 하켄이 보인다. 저녁 9시 등반완료. 치마그란데 북벽을 끝내는 순간이다. 최종 라스트까지 등반을 마친 시각이 저녁 10시 10분. 새벽부터 일어나 6시 30분부터 등반을 시작했으니 15시간 40분이 소요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나 수고했고 뿌듯하다. 우리는 한 팀, 다들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날은 이미 잔뜩 어두워져서 비박지를 찾기로 한다.

하강 중인 황의철 대원
하강 중인 황의철 대원

이 높은 곳에 치마그란데를 거의 한 바퀴 돌 수 있는 오솔길 같은 밴드가 형성돼 있다. 벽을 바라보고 그 밴드를 따라 우측으로 한참을 걸어 돌아가니 바위 밑에 돌무지를 쌓아올린 비박지가 서너 곳 만들어져 있다. 오늘밤 우리의 보금자리다. 준비해간 경량패딩과 비상용 블랭킷으로 쏟아질 듯 가까운 별빛을 가리고, 배낭과 자일로 바닥의 한기를 다스리며 다행히 바람이 없어 그다지 춥지 않은 치마그란데에서의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몸은 피곤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다음 날, 각자 춥고 배고프고 쥐나던 지난밤의 무용담을 나누며 이제 하강을 준비한다. 하강은 가이드 등반이 주로 이뤄지는 노멀 루트를 통해 이뤄진다.

정상에서 약 4시간 30분후에 도착하게 된 아우론조 산장의 뷔페식과 생맥주 한잔은 지난등반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충분하다.

이젠 또 다른 등반을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