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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톤 마스터-2] 윤재학, 몸이 가장 정직합니다
[한국의 스톤 마스터-2] 윤재학, 몸이 가장 정직합니다
  • 마운틴저널
  • 승인 2018.09.3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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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소화기관은 위와 소장, 십이지장, 대장 등 복잡한 형태로 분화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약 7미터 정도에 이르는 하나의 기다란 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탈이 생긴 부분은 잘라내고 이어 붙일 수 있다.

등반용 로프에 흠집이 생긴 끝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쓰듯이 말이다. 코오롱등산학교 대표강사 윤재학씨는 지난 4월 위암 때문에 위를 잘라냈다. 식사량을 조금씩 늘려 가는 동안 잘려나간 위 대신 새로운 소화기관이 자리를 잡아간다고 한다. 수술 후 다섯 달이 지난 지금, 그는 평소 먹던 음식들을 조금씩 자주 먹고 있을 뿐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전과 다름없이 등반도 계속하고 있다.

위(胃)를 잘라내고도 위(上)를 향한 지향과 오름짓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칠 줄 모르는 그를 만나보았다.

윤재학씨는 평소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절제된 생활로 정평이 나있던 사람이다.

그의 위암 발병 소식을 듣고 ‘그렇게 열심히 운동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암에 걸리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제멋대로 사는 게 낫겠다’며 한탄하는 소리도 있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산악인이란 건강을 위해 산에 다니는 사람과 달리, 산에 다니기 위해 체력 단련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산이 심신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1996년 여름, 울산암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는 등산객에게 길을 비켜 주다 미끄러져 무릎 인대가 끊어졌다.

그래서 한동안 달리기를 포기해야 했고, 지난해 2월에는 구곡빙폭에서 추락하는 사람에게 치여 갈빗대가 4대나 부러지는 부상으로 한동안 산행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 봄 위암 수술까지 사고와 수술로 이어진 삶의 크럭스들을 넘어설 때마다 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사실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났습니다. 힘든 투병 생활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막막했어요. 하지만 막상 수술하고 나니 빨리 다시 운동해서 산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예전에 우리 나라에 온 일본 산악인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몸이 가벼워져서 더 큰 등반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수술실에 들어가려니까 그 생각이 났어요. 나도 위를 잘라내고 나면 2킬로그램 정도는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러면 더 나은 등반을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말이에요.”

그러나 그는 수술 직후 7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줄었다. 등반은커녕 온몸의 맥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다시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했고 지난 7월 7일, 수술 후 첫 등반이었던 도봉산 오봉 등반에서는 변함없이 선등을 섰다. 인수봉을 다시 찾았을 때는 ‘취나드B’ 코스를 마치고 곧바로 최고 난이도 5.11d에 이르는 ‘검악A’를 이어서 오르는 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 함께 줄을 묶었던 한등회의 이인규(32세)씨는 건강한 자신도 하루에 두 코스를 등반하는 게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가볍다’며 내내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느라 힘든 걸 잊었다고 했다. 병실 문틀에 매달려서도 턱걸이를 했던 그였다. 산에 대한 그리움은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인 동시에 그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그는 암은 이겨도 산은 못이길 사람이다.

윤재학씨는 수술 전에도 아침저녁으로 쉬지 않고 운동을 계속해왔다. 이전에는 아침마다 용산에서 원효대교 건너 여의도까지 뛰어갔다 와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퇴근 후에는 실내 암장에서 운동을 한 뒤 다시 여의도까지 야간 달리기를 했다. 요즘은 출근 전에 매일 남산을 오르내리고 퇴근 후에는 변함없이 실내암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이틀에 한 번은 스포츠센터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는 마치 직립을 거부하는 인간 같다. 두발로 땅에 서있기보다는 어디에든 매달려 있기를 좋아했다. 등산학교에서 그를 만난 학생들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틈만 나면 어디든 매달려 팔 힘을 키웠다. 나뭇가지든 산장 문틀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의 사무실 앞 복도 천장에도 인공홀드가 박혀 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에너지란 게 한계가 있는데 너무 운동을 많이 해서 탈이 난 게 아닐까’하고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가끔은 게으름도 피우고 몸을 좀 쉬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큰 병치레를 하고 나면 으레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몸을 사리는 보통 사람들처럼 말이다.

“천성인가 봐요. 잠을 잘 때 빼고는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겠어요. 나는 좀더 열심히 운동해서 더 큰 등반을 하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산에 다니기 위해 다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또 감사합니다. 병이란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나는 쉬지 않고 다시 운동을 하니까 회복도 빠른 것 같아요. 곤충이나 물고기를 봐도 보호색이라는 게 있잖아요.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다 자기 환경에 적응해 나가요. 인간도 의지에 따라 자기가 처한 어려움에 적응한다고 나는 믿어요.”

 

10년 넘게 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부인 신임선씨 역시 그나마 산 때문에 병마가 이렇게 늦게 찾아오고 회복 또한 빠른 것이라 믿고 있었다.

“얼마나 꼼꼼하고 예민한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성격이에요. 누가 길에다 침을 뱉는 것도 속이 상해서 못 보는 사람이에요. 만약 산에 안 다녔으면 아마 진작 큰일 났을 거예요.”

그에게 산은 쉼 없이 정진하는 삶의 유일한 쉼표인 셈이다. 그러면서 전염성이 아주 강한 병이기도 하다. 오래 걷는 것조차 싫어하던 부인 역시 그로 인해 어느새 산행에 푹 빠져 있었다. 출근길에도 “당신은 먼저가요.”하면서 남편의 차를 보내고 혼자 사무실까지 뛰어가는 모습 역시 여지없이 그를 닮아가고 있었다.

의지가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 그러나 그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 있을까?

“물론이죠. 인생만큼은 뜻대로 안돼요. 특히 생업과 관련된 일들은 의지만으로는 안 되요. 또 그런 일들은 내가 열심히 안 하면 거래처까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책상 앞에 놓인 노트 한 권을 펼쳐서 보여 주었다. 하루하루의 전화통화 내역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는 통화시각과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는 일일이 진행사항을 ○나 △ 등으로 표시해 놓고 있었다. 이런 통화 기록부만도 수십 권을 가지고 있었다. 책꽂이에는 정갈한 글씨로 손수 쓴 라벨을 붙인 스크랩 자료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늘어서 있었다. 매사 꼼꼼하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이 사무실 구석구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산도 마찬가지예요. 평생 오르고 또 올라도 모자랄 거예요. 나는 산에 다닌 지 25년이 넘었지만 남들처럼 훌륭한 등반을 한 게 없어요.

그냥 내가 좋아서 열심히 다녔지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남들처럼 산에만 푹 빠져보지도 못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핑계일 수 있겠다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짧은 기간에 다녀올 수 있는 해외 벽등반을 좀 하고 싶어요. 하지만 나이가 드니까 과연 내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염려도 되고 그래서 스포츠센터에도 등록한 거예요. 몸은 정직하니까요.”

윤재학씨는 몸이 움직이는 한 오르고 또 오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등반을 보다 더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런 욕심이 없다면 더 이상 그가 아니다.

그는 보다 더 어려운 길을 언제나 앞장서서 흔들림 없이 오르고 싶어한다. 그와 12년 가까이 줄을 묶었던 이재하 씨는 윤재학씨를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하나하나 침착하게 더듬어 가며, 오르는 순간순간 혼신의 노력을 쏟아내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특히 낯선 길 어려운 곳일수록 선등하려는 욕심만큼은 누구도 그를 따를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첨예하고 완벽한 등반을 추구하는 날카로움과 동료에 대한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가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실수로 등반 중에 사고가 일어난 적은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윤재학씨는 지난해 2월, 빙벽 등반 도중 당한 사고 때문에 한동안 산에 가지 못하면서 몸 안에 암세포를 키워냈다 믿고 있었다. 그새 안 하던 술도 늘었고, 손발이 묶여 산에 가지 못하니 그리움이 끝내 병이 된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라면 이골이 나있을 그다. 그럼에도 인생에서 ‘뜻대로 되는 일’이란 몸을 단련하는 일 뿐이라 믿고 있는 사람. 그는 땀 흘린 만큼 변하는 것, 몸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대상이라고 말한다.

사무실 복도 천장에 매달린 인공홀드가 태풍 ‘루사’가 지나간 서울 하늘 아래 풍경(風磬)처럼 흔들리고 있다. 윤재학씨는 오늘도 여기 매달려 더 나은 등반을 위해 몸과의 정직한 거래를 계속하고 있다. 그에게 시련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윤재학

1975년 군 제대 후 산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1976년 대한전선 입사 후 사내 선배로부터 전문등반의 세계에 이끌렸다.

1982년에는 한국등산학교 정규반(18기)과 암벽·빙벽반을 졸업하고, 이후 등산학교 동기들을 주축으로 한 산악회 ‘한등회’를 창립했다. 1985년 다시 코오롱등산학교 정규반을 1기로 졸업하고 이듬해 가을부터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로 등산교육을 시작, 1996년부터는 대표 강사로 후배 산악인 교육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전자·전기부품 유통업체인 대산전기 대표로 있다. 워킹은 물론 암벽·빙벽을 비롯해 스포츠클라이밍에 이르기까지 산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느 것 하나 마다하지 않는 ‘토털 클라이머’로 2000년 10월 대한산악연맹 회장배 인공암벽 대회 장년부 2위, 2001년 2월 에델바이스배 구곡빙벽대회 일반부 2위, 2002년 2월 설악산 빙벽대회 장년부 1위 등 등반경기대회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