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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들은 산악인장(葬)으로 보내야한다
[기고] 그들은 산악인장(葬)으로 보내야한다
  • 전양준 산악인
  • 승인 2018.10.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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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악계에 국보급 존재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망한 그들 기리러 산악인들이 나서야
파키스탄 트랑고타워에서 영화 '벽' 촬영 중 필자(왼쪽)와 임일진 감독
파키스탄 트랑고타워에서 영화 '벽' 촬영 중 필자(왼쪽)와 고 임일진 감독

이럴 수는 없다. 산악인이 산악활동 중 사고로 사망하였는데 산악인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가족장례를 치르려고 한다. 

지난 10월 13일 비보가 날아왔다. 구르자히말 원정을 떠난 김창호 원정대가 베이스캠프에서 돌풍을 맞아 산악인 김창호, 산악인의 일상을 담아내는 임일진 감독 등 원정대 5명, 현지인 4명 총 9명이 사망했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산악인. 모험과 개척의 대명사인 산악인이라는 호칭은 알피니즘 정신으로부터 탄생했다. 알피니즘 정신은 넓은 뜻에서는 등산을 말하지만, 특히 근대적인 스포츠 등산을 이르는 말이다.

알피니즘을 다시 정리하면 창의성으로 과정을 중요시하고 곤란함을 추구하며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 행위자체에 가치를 두며 산악활동은 발전되어 왔다.

알프스에서 시작된 알피니즘 정신은 세계최고봉이 있는 히말라야 도전으로 이어졌다. 1950년대 종전과 더불어 8000m이상의 봉우리를 등정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대신하게 된다. 즉 정상등정은 국위선양을 하는 것이다.

산악인이 등산을 하는 행위는 스포츠가 아니다. 하지만 각국의 매스컴은 도전하는 산악인을 경쟁시키고 그 기록들에 관심을 갖는 매니아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룰을 적용하게 되고 스포츠화 되었다.

산악인의 등산을 하는 행위는 무상의 행위일지라도 정상을 최초로 등정한 산악인의 장비는 불티나게 팔리게 되고 신장비의 테스트역할과 개발의 역할을 하여 산업을 일으켰다. 이렇듯 과거의 등산은 국가나 업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발전해 왔던 것이다.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서 고 김창호(왼쪽)와 필자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서 고 김창호(왼쪽)와 필자

 

히말라야에는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포함하여 8000m이상의 봉우리가 모두 14개이다. 각국에서 다투어 초등한 후 관심은 개인으로 돌아갔다.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후 무산소 등정에 가치를 두었다.

등산은 산이 보유하고 있는 경사도를 이용해 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친자연적인 특수 장비를 통해 속도감과 그로 인한 위험을 동시에 만끽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에게는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산악인에게는 고된 훈련의 결과로 보다 험난한 대상지로 도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산악인들의 사고가 발생했고, 그 사고와 함께 미디어의 발달로 세계화 되었다. 정상도전에 실패를 하고 사고가 많을수록 세간의 관심이 커졌고 누가 어떻게 오르는 지의 관심은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증폭되었다.

우리나라에도 14개의 봉우리를 무산소로 오른 산악인이 있다. ‘공부하는 산악인 김창호’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작년에는 최고의 산악인에게 주는 황금피켈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이런 산악인을 담아내는 임일진 감독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이탈리아 트렌토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모두 국보급 존재이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망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악발전에 기여한 공은 상당히 크다.

그들이 갔지만 필자는 그들을 보낼 수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기에 너무나 해 준 것이 없기에 그냥 보낼 수가 없다. 비록 육신은 사라진다하더라도 그들의 업적과 추구했던 행위는 길이 남아 제2의 김창호와 임일진의 탄생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그래서 그냥 보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