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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자히말 사고 원인 눈사태 후폭풍 가능성 크다
구르자히말 사고 원인 눈사태 후폭풍 가능성 크다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8.11.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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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구르자히말 남벽 베이스캠프에서 9명이 사망한 참사 원인으로 세락 붕괴로 인한 눈사태 후폭풍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3일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강사 세미나에서 유학재 등산교수(한국산악회)는 이번 사고 원인에 대해 구글 위성사진을 통한 현장 지형 분석과 눈사태, 세락 붕괴 등의 가설, 그리고 사고 이후 네팔 언론에서 유튜브에 공개한 동영상 자료 분석을 토대로 눈사태 후폭풍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또 지난 31일 JTBC 취재진과 현지로 출국했던 김미곤 씨(한국도로공사)가 7일 보내온 사진자료에도 상부 세락이 무너진 흔적들이 확인됐다. 사진은 JTBC와의 엠바고 요청에 따라 15일까지 사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미곤 씨는 이와 함께 더플백 8개 분량의 유품을 현지에서 수습했으며 8일 또는 9일 귀국 예정이다.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10월 9일 밤부터 12일 새벽 사이로 추정되는 시각 사고가 발생했으며 12일 국내에 사고 소식이 알려졌다. 13일 헬기 수색을 통해 시신 6구를 확인하고 14일 9구를 모두 수습해 카트만두 대학병원에 안치했다. 대원 5명의 시신은 17일 새벽 국내로 운구되었으며 이후 장례식과 합동영결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김창호, 유영직, 임일진, 이재훈, 정준모 씨
왼쪽부터 김창호, 유영직, 임일진, 이재훈, 정준모 씨

사고자는 김창호 대장과 유영직, 임일진, 이재훈, 정준모 씨와 현지 고용인으로는 치링 보테, 락파 상부 보테, 푸르부 보테, 나트라 바하두르 챈텔 등 9명이다. 네팔 병원 검안의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이들은 12일부터 14일 사이에 사망했으며 원인은 추락사로 추정되는 둔기에 의한 두부, 흉부, 복부 손상이었다.

한국등산연구소와 김미곤, 변기태, 오영훈, 이영준 씨 등이 분석하고 유학재 씨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베이스캠프가 위치한 케야스 콜라(계곡)는 길이 8km, 폭 50~100미터에 양 옆으로 1천 미터 가량의 능선이 솟아 있는 협곡으로, 베이스캠프는 평균경사 8도의 완만한 계곡이 끝나고 경사가 가팔라지는 변곡점인 해발 3576미터 지점(28°38′42.77″N 83°15′25.06″E)에 설치되었다.

구르자히말 위치도. 다울라기리 산군에 있으며 다르방에서 이틀간 카라반 하게 된다. 

 

구글 위성사진으로 본 베이스캠프 위치. 계곡 하단에 퇴적층으로 보이는 삼각주가 형성돼 있다.
베이스캠프 위치(빨간 원) 구르자히말 남벽에서 흘러내리는 다른 계곡과 달리 퇴적 삼각주가 확연히 확인된다.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케야스콜라. 폭 50~100미터 가량 되는 좁은 협곡이 8km를 이어지며 양 옆으로 1천 미터 가까운 능선이 있다.

이곳은 계곡까지 멀지 않아 물을 구하기 쉬우며 완만한 경사의 너른 초원으로 원정대가 계획한 남벽이 잘 관찰되는 위치이기에 베이스캠프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분석 과정에서 몇 가지 특이점이 발견되었다.

첫째, 베이스캠프 하단 계곡에 빙하퇴적층과 같은 모레인 지대가 거대한 삼각주로 형성된 것이다. 남벽에서 흘러내린 다른 계곡과 비교해볼 때 이곳에서만 관찰되는 특이한 지형으로 즉 베이스캠프가 위치한 곳은 잦은 눈사태가 발생하는 지점이며 눈과 함께 흘러내린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것을 뒷받침한다.

이는 동영상에서도 확인되는데 일반적인 빙하 모레인지대와 달리 오래된 눈이 수 미터 이상 쌓이고 여기에 돌과 모래 등의 퇴적물이 덮여있으며 땅과 맞닿은 눈의 아래쪽이 녹아 스노브리지와 동굴과 같은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10월 13일 공개된 영상에서 확인되는 퇴적층. 일반적인 빙하 모레인지대가 아니라 눈이 겹겹이 쌓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모레인지대(사진 위 오른쪽)와 현장 영상에서 확인된 베이스캠프 아래의 퇴적층. 눈이 쌓인 위에 모래와 자갈 등이 덮여있으며 땅과 맞닿은 부분은 녹아 동굴과 스노브리지 등이 형성돼 있다. 

둘째, 베이스캠프 상부 2500미터, 해발고도 5900미터 지점 절벽에 현수빙하가 형성된 것이다. 현수빙하(hanging glacier)란 낭떠러지 또는 산비탈에 형성되는 빙하로 흘러내리면 거대한 눈사태나 산사태를 유발한다. 지난 2002년에는 러시아 남부 조지아 산맥에서 두께 150m에 달하는 현수빙하가 통째로 무너지며 시속 100km 속도로 32km 길이의 계곡을 쓸고 지나가 12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베이스캠프 위쪽 5900미터 지점에 형성된 현수 빙하. U자형으로 눈사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현수빙하에서 바라본 모습. 세락이 무너지거나 눈사태가 발생할 경우 곧장 베이스캠프쪽으로 떨어진다.
베이스캠프에서는 현수빙하가 능선의 커니스로 보일 수 있다. 같은 고도까지 올라가 보기 전에는 육안으로 확인이 어렵다.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구르자히말 남벽. 빨간 화살표 지점들에서 세락이 무너지거나 눈사태가 발생할 경우 곧장 떨어진다. 아래쪽에서 보면 현수빙하는 능선의 커니스로 보인다. 오른쪽 계곡에 눈사태 흔적이 관찰된다.
현수빙하를 옆에서 바라본 모습. 높이 80미터 가량 되는 두께로 절벽에 매달려 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이 빙하의 끝지점은 높이 80미터가 넘는 세락이 확인되고 있다. 빙하의 최고점은 빙하의 끝지점에서 1500미터 거리이며 6050미터로 약 5도의 경사를 지니고 있어 신설표층눈사태가 발생할만한 경사는 아니지만 U자형으로 형성된 양쪽 사면에서 눈이 흘러내릴 경우 폭포처럼 곧바로 쏟아질 수 있는 지형이다.

6일 헬기로 5900미터 지점에서 촬영한 사진들에는 세락의 끝부분에 무너진 흔적들이 관찰되었다. 

셋째, 카트만두TV 등 현지 언론이 10월 13일 공개한 11분 55초 분량의 헬기수색 영상에서 베이스캠프 주변 눈사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영상 7분 2초 지점. 약간 경사면에 설치된 베이스캠프 흔적과 오른쪽 깊은 계곡에 덮인 눈사태 흔적이 보인다. 
8분 58초 영상과 합성해보면 베이스캠프 오른쪽 계곡에 쌓인 눈의 양을 가늠해볼 수 있다. 깊이 10미터 이상, 길이 수백 미터에 가깝다.

7분 2초 지점에서는 베이스캠프의 텐트 설치 흔적과 캠프 오른쪽 계곡에 최소 10미터 이상 두께로 쌓여 있는 눈이 확인된다. 8분 58초에 등장하는 장면과 합성해보면 베이스캠프 오른쪽 계곡을 덮은 눈덩이들이 전체적으로 보인다.

8분 53초, 베이스캠프(빨간 원) 왼쪽 사면은 땅이 무엇에 쓸린 흔적이 확인된다. 
3분 33초, 시신 발견지점 주변의 초목이 아래쪽으로 모두 누워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8분 53초에는 베이스캠프 왼쪽으로 초원지대에 한쪽방향으로 일정하게 쓸린 자국이 관찰되며 3분 33초에는 침낭에 덮인 시신 주변으로 아랫방향으로 쓸고 지나간 듯 초목이 누운 모습이 확인된다.

베이스캠프쪽으로 깔때기와 같은 계곡이 형성되어 양쪽에서 흘러내린 세락과 눈사태가 베이스캠프를 덮치는 지형이다.

즉 베이스캠프 오른쪽 상단 깔때기와 같은 지형의 계곡을 따라 눈사태가 흘러 내렸으며 베이스캠프 오른쪽 깊은 계곡의 벽을 만나 눈은 계곡에 쌓이고 이로 인한 후폭풍은 벽을 넘어 사면에 위치한 베이스캠프를 강타했던 것이다.

김미곤 씨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수습한 유품들은 대부분 베이스캠프 왼쪽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김미곤 씨가 수습한 유품 대부분은 베이스캠프 왼쪽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눈사태가 오른쪽 계곡으로 흘러내렸으며 후폭풍은 벽을 넘어 베이스캠프를 덮치고 왼쪽으로 쓸고 지나갔다.

후폭풍의 세기가 어느 정도였는가에 대해서는 유체 운동에 관한 에너지 보존법칙인 ‘베르누이의 법칙’에 따라 초기 발생한 후폭풍이 협곡을 거치며 그 압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적용할 수 있다. 이 법칙에 따르면 바람의 압력은 바람이 지닌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며, 이동하는 통로가 좁을수록 속도가 증가한다. 북한산 백운대와 맞닿아 협곡과 같은 안부를 형성하는 인수봉 서면이 동면이나 남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부는 것도 같은 원리로 볼 수 있다.

초속 20미터 이상 바람이 불 경우 사람이 날아갈 만한 풍압을 지니게 되는데, 텐트의 단면적에 대입해보면 순간적으로 받았을 압력은 최소 300~1000kgf까지 된다.

이 같은 현장 영상과 자료에 비추어볼 때 이번 사고 원인은 세락 붕괴로 인한 눈사태와 후폭풍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한편 현장 촬영 영상과 현지 인터뷰 자료를 종합해 사고백서를 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