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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작지만 큰 산 설악, 그곳에 울렸던 요델
[서평] 작지만 큰 산 설악, 그곳에 울렸던 요델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8.12.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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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산 개척 등반기』 -설악산 편- 백인섭/ 퍼플
『작은 거산 개척 등반기』 -설악산 편- 백인섭/ 퍼플

『작은 거산 개척 등반기』는 미친듯이 산에 올랐던 한 산악인이 쓴 젊은날의 회고담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 편의 글들은 이미 월간 『산』이나 『사람과 산』의 지면을 빌려 소개된 바있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자는 등반에 몰입했지만 치기어린 허장성세가 여기에는 없다. 그는 젊은날의 이야기를 아무런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1960~70년대 도봉산 선인봉과 설악산의 바위와 암릉, 미등의 빙벽을 누비며 새로운 길을 뚫는 개척등반에 열정을 기울여왔던 사람이다.

맨 왼쪽이 필자 백인섭이다.

당시 저자의 등반활동은 한국 현대등반사의 한 단면이기도하며 저자의 혈기방장했던 청년시절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오로지 ‘맨주먹 정신’으로 산을 향했던 열정은 저자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옛 산악인들의 지난날 자화상이기도하다.

저자는 산악인이자 전자공학 박사답게 등반과정의 상세한 묘사나 분석은 그와 함께 자일을 매고 개척등반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문체는 투박하지만 당시의 심정토로가 너무나 리얼하고 섬세하다.

저자의 등반여정에는 개척등반의 성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의 등산 노트 중

1968년 1월 북한 124군 소속 무장공비가 서울에 침투했을 당시 저자는 설악산에서 동계등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동료들을 봉정암에 남겨두고 용대리에서 쌀 한 말을 조달하여 돌아오던 중 우회등산로를 피해 8발 아이젠을 신고 쌍폭을 오르다 바닥으로 추락, 다리골절상을 입는다. 동료들의 등에 업혀 용대리 까지 장장 15km 하산은 지옥행 그 자체였다. 그는 용대리에서 돌팔이 침쟁이의 도움으로 응급처치를 한 후 귀경을 거부한 채 다시 설악산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범인(凡人)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산에 대한 강한 집념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당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동안 그 후유증으로 고생을 한다. 산에 대한 이런 집념은 젊은날 등산의 올가미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저자의 자화상이기도하다.

1971년 저자는 토왕폭 등반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의기투합한 동료와 함께 출사표를 던진다. 그러나 토왕성폭에 대한 첫 시도는 끝내는 시도로 끝나고 말았지만 설악산에서 이루어진 거대 빙폭 등반의 원년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당시 그가 만들어 사용한 장비들은 손수 제작한 조악한 것들이었다. 대장간에서 무쇠로 제작한 8발 아이젠, 파이프형 아이스하켄. 군용워커와 방한장화, 줄사다리, 고드름에 슬링을 걸어 확보물로 사용하는 고드름 체인 등을 활용해 힘든 등반을 시도했다. 등반방식은 주로 스텝커팅과 아이스하켄에 줄사다리를 걸어 오르는 인공등반방식을 구사했다. 첫 시도에서 체험한 문제는 고드름층 극복이 최대의 관점으로 부상한다. 당시의 장비나 기술수준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었지만 모든 일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해 1월 잦은바위골 100미터 폭 성공은 설악산에서 이룩한 최초의 빙벽등반성공으로 재평가되어야할 것이다.

토왕성폭을 인공등반으로 시도중.

같은 해 그는 한국산악회가 파견한 프랑스 ENSA교육대의 일원으로 참가, 알프스 일원에서 교육훈련을 이수하고 귀국한다. 당시 그가 ENSA교육과정에서 배운 프런트 포인팅 기술은 토왕성폭에서 풀 수 없었던 난제들의 해답이었다.

한국의 우물 안 개구리가 선진국체계의 기술과 첨단장비와의 만남을 통해서 새로운 설빙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프런트 포인트가 장착된 최첨단 소재의 특수강 12발 아이젠과 바닥이 견고한 비브람 창 등산화의 위력을 실감한다.

프랑스에서 귀국한 그는 토왕성 빙폭에 대한 재도전의 연장선상에서 1973년 1월 자일 파트너로 선정했던 사랑하는 후배 송준호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건은 토왕폭 등반사에서 최초의 조난으로 기록되었으며 동료를 잃은 슬픔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등반일선에서 활동하던 6~70년대는 개척등반의 황금기였다.

도봉산 선인봉의 양지길, 자운봉의 무명길, 만장봉의 낭만길과 그림길, 선인봉의 허리길과 표범길, Y길과 설악산의 범봉과 범봉 연봉, 석주길, 칠형제봉, 염라길, 흑범길, 노적봉 서측 암릉, 동원암(잦은 바위골 소재의 작은 암봉) 동계 용아장성 등의 암벽과 암릉에서 등반의 전성기를 장식한다.

오늘날 여러 산악인들에게 회자되는 외설악 깊은 계곡에 감추어진 수려한 경관의‘석주길’이라는 암릉의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이 길은 노루목에 나란히 묻혀 있는 저자의 후배 홍석의 ‘석’자와 현주의 ‘주’를 합성한 이름이다. 산에서 죽은 동료 두 사람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헌정한 이름이다. 두 사람은 등산도중 비룡폭포 밑에서 익사했고 사후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바윗길은 내가 만든다’는 고집 하나만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 저자의 독창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무한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저자와 동료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산악인들에게만 어떤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길은 등반의 길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길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가슴 뛰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일구어 놓은 수많은 바윗길과 리지들은 한국등산사의 한 장으로 먼 훗날까지 역사적인 기록으로 전해질 것이다. 작은 거산 개척등반기는 저자가 마지막으로 개척한 또 다른 작은 거산임이 분명하다. 일독을 권한다.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한국산악회 도서관장

韓國山書會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