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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한산으로 돌아가자
[칼럼] 남한산으로 돌아가자
  • 이승기 교육학박사
  • 승인 2018.12.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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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으로 돌아가자”는 칼럼을 발표했더니, 지인이 질문을 해온다.

“북한산이 화산활동을 통해 ‘북’하고 올라온 산이라면, 남한산은 어떤 뜻이지요?”

또, 다른 지인은 그동안의 역사연구에 대해 말씀하시기도 한다. 역사란 것은 각종 문헌과 유물과 유적을 통해 찾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역사연구는 우리말이 갖고 있는 뜻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적었던 것 같다. 한자어로 적힌 문헌들은 그냥 한자어의 뜻으로 해석하려했던 경향이 짙었다. 그러다보니 도저히 한자어 뜻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말들이 많아지게 된다. 산이름들도 그렇다. 우리말로 보면 참 아름다워지는 뜻들이 한자어로 기록되는 바람에 그 뜻이 왜곡되어버리는 경우들이 참 많다. 남한산도 그렇다.

남한산성은 일제강점기를 통해 크게 파괴되는데, 가령 동문 오른쪽으로 새 도로가 뚫리며 그 부분의 성벽은 끊어져 버리고 만다. 문루 옆이 계단 모양으로 된 것도 그러한 파괴 내지 변형의 한 증거다.

남한산 이름을 지을 때는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산의 모양에서 따오든지, 산의 유래에서 따오든지, 산에 많이 사는 동식물에서 따오든지, 또는 산의 역사나 문화적인 사례에서 이름을 따왔을 것이다.

북한산은 한강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고, 남한산(南漢山)은 한강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으니까 한자뜻 그대로 생각하면 한강의 북쪽과 한강의 남쪽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단순한 분들이 아니셨다.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남한산에 백제의 군사창고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의 남한산 초등학교 근처의 식당가에 아직도 백제의 군사창고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서 백제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부분이다.

또, 삼국사기에서는 부아악에서 하남의 땅을 표현하기를 북으로 한수를 띠고, 동으로 높은 산을 의거하고, 남으로 기름진 들을 바라보고, 서로는 큰 바다가 막혔다고 표현하였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 속한 이 곳을 당시에는 하남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우리역사문화모임에서 해석한 삼국사기의 내용을 옮겨본다.

「백제 시조는 온조왕(溫祚王)이다. 그의 아버지는 추모(鄒牟) 혹은 주몽(朱蒙)이라 한다.

북부여에서 난리를 피하여 졸본부여로 왔다. 부여왕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서 비상한 인물임을 알고 둘째 딸을 그의 아내로 주었다.

얼마 안 되어 부여왕이 죽고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이는 비류요, 다음은 온조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적에 낳은 아들이 찾아와 태자가 되자 비류,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염려한 나머지 오간, 마려 등 열 사람의 신하와 더불어 남으로 떠나니 그를 따르는 백성이 많아 드디어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 살 만한 땅을 찾았다. 비류는 바닷가로 거처를 정하려고 하니 열 사람의 신하가 간하는 말이 “이 하남(河南)의 땅은 북으로 한수(漢水)를 띠고, 동으로 높은 산을 의거하고 남으로 기름진 들을 바라보고 서로 큰 바다가 막혔으니 얻어 보기 어려운 천험지리의 형세인지라 여기에 도읍을 마련함이 좋지 않습니까?”라고 하였으나 비류는 듣지 아니하고 그 백성을 나눠가지고 미추골(彌鄒忽)로 가서 사니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신하로 보필을 삼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하였다. 이때는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嘉) 3년(B.C 18년)이었다.

비류는 미추골이 토지가 습하고 물맛이 짜서 편히 살 수 없어 돌아와 위례성(慰禮城)을 보니 도읍이 자리 잡히고 백성이 안락하므로 드디어 뉘우침 끝에 죽으니 그 백성이 다 위례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 온조가 처음 올 때 백성들이 즐겨 따랐다하여 국호를 백제(百濟)로 고쳤다. 그 세계(世系)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부여로 성씨를 삼았다.」

남한산성은 이승만 대통령 정권 말기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하야 후 장면 정부에 의해 바로 그 지정이 취소되고 만다. 그러다가 1971년이 되어서 다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다. 사진은 도립공원 지정 후 보수작업을 하고 그 내용을 새겨 동문 근처에 세운 비석.

 

그렇다면, 남한산이 갖는 우리말의 뜻은 어떠할까?

태어나다(태어남)

-형태를 갖추어 세상에 나오다(나옴).

싹이 나다(싹이남)

-씨앗이나 줄기에서 처음 나오는 어린잎이나 줄기가 나오다(나옴).

샘이 나다(샘이 남)

-물이 저절로 땅속에서 솟아 나오다(나옴).

솟아나다(솟아남)

-(기운이나 힘, 어떤 느낌 따위가) 강하게 생겨나다(생겨남).

자라나다(자라남)

-(생명체가) 점점 크게 되다(됨).

‘나’는 ‘나무’에서 싹이 나오거나, 자라나는 상태를 말한다. 없었던 상태에서 생겨나거나, 작았던 것들이 점점 크게 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남’은 처음 태어남이나 솟아남을 말하며, 또, 성장하여 자라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제의 시작이 한반도가 아니라는 주장들도 있고,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역사를 왜곡하였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주장들과는 별개로 우리말의 뜻과 삼국사기의 내용, 그리고 북한산의 뜻에 비추어 본 남한산의 우리말 뜻은…….

‘백제가 태어한 산’이 아니었을까? 또는 백제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산이 남한산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억지주장에 그치는 것일까?

“남한산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