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9 13:32 (목)
33년 전 국내 최난의 빙벽을 오른 장비
33년 전 국내 최난의 빙벽을 오른 장비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8.12.27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악산 대승폭포. 사진 코오롱등산학교
설악산 대승폭포. 사진 코오롱등산학교

설악산 대승폭포는 현재에도 국내에서 가장 어려운 빙벽으로 꼽힌다.

폭포가 남향이라 잘 얼지 않으며 얼어붙었더라도 전체가 120여 미터의 거대한 고드름으로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진다. 실제로 지난 1990년에는 등반 중 폭포의 절반이 무너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행이 당시 등반 중이던 팀의 발 아래쪽이 무너져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런 대승폭포에 처음 도전한 사람은 윤대표, 정호진(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 대표) 씨였다. 1980년쯤 대승폭포를 처음 본 윤대표씨는 이듬해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1983년과 1984년에도 겨울이면 그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1985년 1월 19일, 윤대표, 정호진, 홍성암, 이정범, 김윤기, 신기철, 조호행, 유정수 씨 등 8명은 다시 대승폭포를 찾아 사중폭포 앞에서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 다음날인 20일 아침 윤대표, 정호진, 홍성암은 등반조, 나머지는 지원조로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그 일주일 전 대승폭포 빙질을 살피러 윤대표, 정호진 씨가 정찰을 왔을 때, 이용대(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김재근(어센트산악회, 1975년 구곡폭포 초등) 씨를 만난 것이다.

이용대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누구도 대승폭포를 등반할 것이라고 말은 안했지만 인적 드문 그곳에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이라 후배들이 등반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1피치는 정호진 씨가 선등을 서고 2피치 선등 중 윤대표 씨의 12m 아찔한 추락 끝에 시간이 지체되어 홍성암 씨는 먼저 하강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두 사람이 정상에 선 건 등반을 시작한 지 6시간이 지난 뒤였다.

1967년 처음 출시한 취나드 알파인해머(오른쪽) 사진속 모델은 이후 장비걸이에 휴대가 쉽도록 해머 아래쪽을 둥그렇게 깎아낸 개량형이다 . 왼쪽은 취나드 아이스 스크루. 1985년 정호진 씨가 설악산 대승폭 초등시 사용한 것이다. 
블랙다이아몬드의 전신인 취나드 사의 장비 개발사

사진은 당시 정호진 씨가 사용했던 취나드 알파인 해머. 다른 쪽은 로우알파인의 허밍버드 아이스해머를 사용했으며 확보물은 주로 하프 튜브 스나그와 취나드 아이스 스크루를 사용했다고.

정호진 씨는 이 취나드 알파인해머에 대해 “청빙에 잘 박혀서 이걸 갖고 갔지만 손목고리가 없기 때문에 해머 끝의 웨빙을 손목에 둘둘 말아 사용하다 타격할수록 웨빙이 풀리며 샤프트를 움켜쥐게 되어 엄청난 펌핑이 왔다”며 “하지만 고드름이라 튜블러 피크인 허밍버드보다는 알파인해머가 나았다”고 말했다.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는 1967년 1과 4분의 1인치 알파인 해머를 처음 내놓았다. 이후 1968년 리지드 크램폰, 1969년 취나드 피올레(피켈) 등 빙벽등반사의 한 획을 긋는 장비들을 연달아 개발했다.

정호진 씨는 취나드 사에서 이어온 블랙다이아몬드 장비를 국내에 보급하고 있다.

지난 2014년 회갑 기념으로 엘 캐피탄 노즈를 등반 중인 정호진 씨. 사진 정호진 페이스북
지난 2014년 회갑 기념으로 엘 캐피탄 노즈를 등반 중인 정호진 씨. 사진 정호진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