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2-17 22:45 (일)
‘고속도로’ 달린 남극 최초 단독 무지원 횡단?
‘고속도로’ 달린 남극 최초 단독 무지원 횡단?
  • 오영훈 미국통신원
  • 승인 2019.01.18 2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광산업발달로 속도경쟁 치우친 극지에서의 ‘무보조’ 탐험

2018년 12월 말 미국의 콜린 오브레이디(33)가 남극 대륙을 최초로 무지원·단독 횡단에 성공했다는 보도가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최초’ 및 ‘무지원’ 타이틀을 두고 결정적인 반박이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오브레이디는 11월 3일 시작해 53일 동안 총 1455km를 완주했다. 170kg 무게의 썰매를 스키를 타고 하루 12~13시간씩 끌었다. 특히 마지막 600km 구간을 15일 만에 주파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고, 최종 128km 구간은 3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주파했다. 오브레이디는 2016년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단 132일 만에 완등했고, 비슷한 기간 남북극점 도달에도 성공하여 총합 139일로 종전기록 192일을 깨고 ‘탐험 그랜드슬램’ 최단시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콜린 오브레이디는 7대륙 최고봉과 남북극점 도달의 ‘탐험 그랜드슬램’을 132일이라는 최단시간 기록을 수립하며 달성했다.
콜린 오브레이디는 7대륙 최고봉과 남북극점 도달의 ‘탐험 그랜드슬램’을 132일이라는 최단시간 기록을 수립하며 달성했다.

한편 오브레이디는 남극대륙으로 건너가기 전 칠레의 한 식당에서 마찬가지로 남극대륙 단독횡단을 도전하던 루이스 루드라는 영국인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루드는 오브레이디에 이틀 뒤져 완주에 성공했다. 둘의 탐사는 미디어에서 경쟁으로 비추며 1910~1912년의 남극점 탐험 영웅 아문센과 스코트에 비유하기도 했다.

오브레이디와 루드의 탐사는 주요 언론에 실시간으로 경쟁처럼 보도됐고 1911년의 아문센·스코트 경쟁과 비교되기도 했다. 이미지 뉴욕타임스.
오브레이디와 루드의 탐사는 주요 언론에 실시간으로 경쟁처럼 보도됐고 1911년의 아문센·스코트 경쟁과 비교되기도 했다. 이미지 뉴욕타임스.

그러나 탐험전문사이트 ‘익스플로러스웹’에서 결정적인 비판을 제기했다. 일단 오브레이디가 극점에서 돌아 나올 때 택한 루트는 미국 맥머도 남극기지부터 연결되는 맥머도-남극점 고속도로다. 남극은 일반적으로 눈이 흩뿌려져 굳은 울퉁불퉁한 ‘사스트루기’라 불리는 등성이들로 인해 스키 타기가 무척 불편하다. 그러나 2005년 확정된 맥머도 고속도로는 주기적으로 대형 차량이 남극점 기지를 왕복하고 루트를 보수해 스키에 알맞게 길이 평탄하다. 1백m 정도마다 화이트아웃을 대비해 깃발이 꽂혀 있고, 이 루트를 통해 48시간 만에 남극점을 왕복하는 관광차량도 주기적으로 왕복한다. 지원차량을 앞세우고 여럿이 함께 달리는 스키원정대 관광상품도 있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인 셈이다. 이 루트에서는 아니지만 실제 남극대륙에서는 마라톤도 개최된다.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남극점 ‘탐험 관광’ 중인 관광객들. 사진 매튜 토르듀.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남극점 ‘탐험 관광’ 중인 관광객들. 사진 매튜 토르듀.

극점탐사에서 무지원(unsupported)이란 식량·장비 등을 항공편 등을 통해 지원받지 않는 것을 말하고, 무보조(unassisted)란 연(풍력), 개(썰매), 도로, 표식기 따위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통용된다. 이중 기술이 필요하고 사실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연 사용이 ‘보조’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의견이 분분하다.

남극대륙 도보탐사에서 울퉁불퉁한 ‘사스투르기’를 넘는 게 큰 관건이다. 사진 라이언 워터스.
남극대륙 도보탐사에서 울퉁불퉁한 ‘사스투르기’를 넘는 게 큰 관건이다. 사진 라이언 워터스.

오브레이디의 남극대륙 횡단 주장에 제기된 가장 큰 지적은 무엇보다 얼음대륙(land ice)을 건너뛰고 육지만 주파했다는 사실이다. 남극대륙에서 극점과 바다가 가장 가까운 두 곳은 각각 넓은 얼음지층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꽁꽁 언 개펄이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브레이디는 이를 ‘바다얼음’(sea ice)이라며 건너뛰었다. 하지만 배에서 내려 탐사를 시작해야 했던 아문센·스코트부터 주요 최초 업적을 남긴 남극대륙 탐험가들 모두 해안에서 탐사를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1996~7년 뵈르게 오우슬란(노르웨이)의 남극대륙 단독·무지원 횡단도 재조명받았다. 오우슬란은 실제 바닷물과 만나는 부분부터 시작해 역시 반대편 바닷물까지 총 3000km를 주파했다. 그는 모든 과정을 홀로 이겨냈지만 바람의 힘을 받아보고자 몇 차례 연을 펼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무보조(unassisted) 탐사에는 이견이 있다.

오브레이디-루드 횡단루트(청색)와 오우슬란 횡단루트(적색) 비교. 이미지 뉴욕타임스.
오브레이디-루드 횡단루트(청색)와 오우슬란 횡단루트(적색) 비교. 이미지 뉴욕타임스.

오늘날의 극지탐사는 기록단축에 과열되는 양상이다. 수많은 편이 및 보조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채 명성과 홍보를 위한 모호한 기록설정은 탐험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행위라는 비판이다. 정확한 무지원·무보조 남극대륙 횡단은 아직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다.

남극대륙을 횡단하고 스코트기지에 도착한 뵈르게 아우슬란. 사진 뵈르게 아우슬란.
남극대륙을 횡단하고 스코트기지에 도착한 뵈르게 아우슬란. 사진 뵈르게 아우슬란.

기술발달과 탐험축적, 관광산업으로 인해 남극대륙은 오늘날 전혀 ‘고독한 탐험’의 대상지가 아니다. 미세한 오차까지 잡아주는 GPS로 실시간 위치와 방향을 확인하고, 위성전화 및 헬기/비행기를 보유한 상시구조대로 수 시간 내 구조가 가능하다. 오브레이디는 실시간으로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탐사내용을 중계했고 위성전화로 고국에 있는 부인과 매일 통화했다. 하루이틀 간격으로 추격하는 오브레이디와 루드의 경쟁양상은 뉴스매체에 의해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1988년부터 남극점 도달에 상업원정대가 조직된 이래 오늘날 남극대륙은 상업화된 탐험을 통한 관광산업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지하자원채굴 및 연구를 위한 각국의 다툼도 치열하다. 한국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극지연구소는 지난 11월부터 장보고기지에서 남극점까지 직선거리 1700m, 주행거리 3000km에 이르는 코리안루트 개척에 나서기도 했다. 2020년까지 세계 여섯 번째 내륙기지 보유국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