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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산을 바라보다
[서평] 산을 바라보다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9.02.1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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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바라보다》김병준 저

우리 앞에 저자 김병준은 두 번째 책을 들이밀었다. 바로 산문집《산을 바라보다》이다. 그의 첫 저서《K2-죽음을 부르는 산,1987, 예문사》은 독자들에게 이미 알려진 K2등반보고서다. 세인들이 그를 기억하는 뚜렷한 사건은 1986년 세계 제2위 고봉 K2(8611m)에 최초의 한국인을 올린 원정대의 명실상부한 대장이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등반을 끝내고 훌륭한 보고서를 펴냈기 때문에 더 알려진 사람이다.

대부분의 등반보고서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이 책만은 다르다. 무미건조한 팩트의 전개대신 박진감 넘치는 감동과 내면의 갈등을 기록하고 있는 단순 보고서의 성격을 뛰어넘어 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등반보고서는 천편일률적으로 일정한 형식의 틀에 묶여 출장복명서 같은 무미건조한 사실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K2 등반과정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전개에 따라 구성된 기록문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한 중견작가는 이 책을 읽어본 뒤 원정보고서의 문학적 가능성을 열어준 창작물이라고 극찬했다.

이 책이 한국산악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것은 어느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집단이 선정한 객관적인 평가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2017년 한국산서회가 선정한 ‘한국의 베스트산서 30선’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단독 3위로 평가된 저서다. 이후 이 책은 《K2, 하늘의 절대군주 2012》로 제호를 바꾸고 내용을 보완 중간(重刊)한다.

첫 책 출간 이후 저자는 32년이라는 오랜 침묵을 깨고 산문집《산을 바라보다》를 펴냈다. 이 책은 1부 <산, 내 사랑> 2부 <내 생애의 산행> 3부 <우리나라 등산의 어제와 오늘> 등 3부로 꾸며진 등산 에세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산을 바라보는’ 평소 생활철학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수많은 세월을 산을 바라보며 살아온 한 산악인의 비망록이다.

이번에 출간된 《산을 바라보다》는 다른 저서들과 달리 편안하게 시작되는 문장을 따라가다가도 결국엔 한국산악계 혹은 세계 산악계의 중요한 사건들을 팩트로 삼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들이 상당수 포함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수록된 174점의 사진들은 한 장 한 장 모두가 역사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이중 몇 점은 이제까지 미공개 된 광복 이전과 한국전쟁 전후의 사진들도 있다. 길게는 80여년의 시차를 지니고 있으며 과거 시간대의 공간에서 활동한 현장을 오늘의 일처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한 없이 가벼운’ 에세이가 아니다. 아무리 작은 화제(話題)라도 평생을 산에서 보낸 산악인의 묵직한 존재감과 안목이 실려있어 깊고 융숭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제1부에서 저자가 털어놓는 동료 선후배 산악인들과의 교류기나 추억담은 저자의 폭 넓은 대인관계를 엿볼 수 있는 일이다. 한국산악계의 정신적 지주 김영도, 히말라야 거벽등반의 한을 남기고 산화한 고 박영석, 세계가 공인하는 진정한 산악영웅 고 김창호, 16좌의 간판스타 엄홍길, 차분하고 겸손한 휴머니스트 한왕용, 거친 광야를 질주하는 야생마 김재수, 아직 젊고 미래가 밝은 김미곤, 세계최초를 향한 도전에서 곤경에 처한 여성최고의 등반가 오은선, 14좌의 미련을 남기고 사라진 전천후 여성등반가 고 고미영, 남보다 한 발 앞선 행보 때문에 주변의 질시를 받던 김인섭, 두 차례의 조난에서 생환한 불사신 박훈규, 한국산악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뚝심의 사나이 고 홍석하, 맹장이자 지장인 부산 산악운동의 대명사 홍보성, 14봉 무산소등정의 문턱에서 사라진 고 서성호, 국내 최초로 겨울백두대간을 단독 종주한 여걸 남난희 등 현존하는 산악인은 물론 고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추억담은 읽는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국내외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가 아니면 누가 이런 풍부한 이야기들을 한데 버무려 자신만의 목소리로 들려 줄 수 있을까.

이 책에는 등산과 관련된 수많은 사료(史料)들이 담겨 있다.

제3부 <우리나라 등산의 어제와 오늘>은 한국 등산발전사다. 등산과 관련된 역사는 저자가 축적해온 방대한 자료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생생한 등반 경험 그리고 등산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그만의 통찰이 빚어놓은 번뜩이는 지혜들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구적 의미의 등산이 최초로 탄생한 시기부터 정착기까지의 발자취를 등산교육, 각종등산대회, 암빙벽등반 발달사, 국산등산장비의 세계화, 해외원정사, 히말라야 등산사, 백두대간등산의 대중화, 산악문화, 산악문학, 조난구조 활동 등을 분야별로 세분화해서 정리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우리산악계가 안고 있는 현안을 성찰하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글을 남기고 있다. 이 글은 저자 나름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는 글이다.

산은 좋지만 사람들로 북적이는 어수선하고 번잡한 등산로 때문에 마음이 허전해진 경험이 있다면, 이제 조용히 이 책을 펼쳐보라 권하고 싶다. 또 막연히 산을 동경만하는 사람에게도 값비싼 등산복 대신 먼저 이 책 한 권을 선물하고 싶다. 《산을 바라보다》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정수는 이것이다.

주 5일 근무로 여가 시간이 늘었다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늘어난 자유 시간을 TV나 보면서 시간을 축낼 일이 아니다. 산서 읽기에 시간을 투자해보는 것도 여유시간을 값지게 활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사자성어중 개권유득(開卷有得)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펼치면 유익함을 얻을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