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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판 ‘에켄슈타인’의 독백… 『등반중입니다』
|서평| 한국판 ‘에켄슈타인’의 독백… 『등반중입니다』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9.02.1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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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재 지음 / 알파인웍스 펴냄 / 값 2만원

 

책 제목부터가 현재진행형인 『등반 중입니다』는 산악인 유학재의 등산인생 44년의 편린들을 모아 엮어낸 이야기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몇 편의 글들은 이미 월간 『마운틴』지의 지면에 소개된바있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삶에 산이 스며든 것은 소년기부터다. 누대에 걸쳐 우이동에서 살아온 그는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동네 친구들과 도시락을 싸들고 백운대를 오르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간 곳이 인수봉 대슬랩 아래였다. 인수봉과 그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그후 그는 인수봉에 올랐고, 인수봉을 오르다 추락하여 몇 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겨울이면 빙벽을 찾아 설악산, 월악산, 백두산 등의 빙벽을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당시 그는 설악산 토왕성 폭포를 1시간 38분만에 단독으로 올랐고 개토왕폭포를 초등한다. 그의 빙벽등반에 대한 갈증은 한반도 최북단 백두산 장백폭포에 까지 미친다. 이때의 등반은 등반성의 문제보다는 한국전 참전대가로 중국에 빼앗긴 폭포를 초등하여 민족자존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컸으며 조선일보가 후원했다. 물 반 얼음 반의 80m 빙폭을 초등한다. 이때의 등반에는 필자도 참여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활동반경은 유럽알프스, 아시아의 히말라야, 북미 알래스카, 남미 아콩카구아와 침보라소, 미주 요세미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산을 상대로 지구의 5대륙을 섭렵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알피니스트로 성장하여 이순의 문턱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칠 줄 모르는 등반열정은 아직도 ‘등반 중이다’.

그는 산을 오르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처럼 틈만 나면 산에 올랐다. 그가 걸어온 중요 행적을 살펴보기로 하자.

1990년 파미르 코뮤니즘봉(7,545m) 등정, ‘브로드킨 루트’ 한국 초등. 1992년 데날리 키차트나 스파이어 동벽(2,905m) ‘코리안 다이렉트’ 초등. 1997년 히말라야 가셔브룸 4봉(7925m)서벽 코리언 다이렉트 루트 초등. 2006년 네팔 꽁데샤르(6,093m) 동계 한국 초등. 2010년 네팔 파리랍차(6,017m) 북동벽 ‘코리안 루트’ 초등. 2011년 탄자니아 킬리만자로(5,895m)및 네팔 카조리피크(6,184m) 등반. 2012년 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6,962m)등정. 2013년 아마다블람 동벽 등반. 2014년 북미 데날리(6,194m)및 롱스피크(4,348m)등정. 2016년 북미 휘트니(4,109m), 그랜드티톤(4,200m), 데블스 타워 등정. 러시아 엘부르즈(5,642m)등정. 네팔 메라피크(6,476m)등정. 네팔 피크41(6,648m) 북벽 초등정. 2017년 네팔 자보우리피크(6,166m)및 키르기스스탄 코로나(4,440m)등정 등이다.

그는 후진 양성을 위해 코오롱등산학교와 한국산악회 연수원에서 오랫동안 등산교육에 참여해왔다. 등산교육 중에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평생 반려가 된 미모의 부인 박현우와의 만남이다. 아마도 수십 차례에 이르는 해외원정은 부인의 이해와 협조가 없었다면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산을 오르기 위해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처럼 산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올랐다. 그러나 등반을 하면 할수록 더 높은 산, 더 어려운 산에 대한 갈증은 더해갔다. “산은 내게 마시고 또 마셔도 해갈되지 않은 목마름”이었다. 그것을 해결하는 일에만 온 정신을 집중해 온 것이 44년이 되었다고 술회한다.

유학재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이미지가 있다.

그 하나는 장비제작의 귀재라는 점. 둘째는 1997년 히말라야의 악명 높은 벽 가셔브룸 4봉(7925m) 서벽에 코리언 다이렉트 루트라는 새로운 길을 뚫고 루트 초등에 성공하면서 세계 산악계에 비상한 관심을 던져준 점이다. G4 서벽이 보통의 벽인가. 세계최고의 알피니스트들에게 조차 외경의 대상이었던 벽이다. 이 벽을 초등한 세계적인 등반가 보이텍 쿠르티카의 말처럼 가장 험난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대상이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쿠르티카는 등반을 끝낸 뒤 “그 산의 서벽에서 살아 돌아온 것 자체가 행운이다”라고 말할 정도의 어려움을 지닌 벽이다. G4는 8000미터에서 불과 75미터가 모자랄 뿐 서벽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2500미터 높이의 눈. 얼음 .바위로 이루어진 악명 높은 거벽이다.

그가 대장으로 참여해 등로주의 전형을 보여준 G4등반대의 성과에 대해 세계 산악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도 나왔다. 미국서 발간하는 《아메리칸 알파인 저널》과 《클라이밍》지에는 산악평론가 에드 더글라스가 다음과 같은 논평을 실어 한국대의 성과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다.

“연중 눈이라곤 구경도 할 수 없는 열대의 작은 섬나라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팀이 동계올림픽에서 우승을 한 것과 같다.”

한국대의 성공이 뜻밖의 성과라는 투의 논조였다.

셋째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재주를 지녔다는 점이다. 내시 같은 목소리로 익살을 부려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도 그의 타고난 장점 중의 하나다.

그의 장비제작 솜씨는 ‘한국판 에켄슈타인(1908년 10발 크램폰을 처음 개발한 영국 산악인)’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풍부한 아이디어와 손재주를 지닌 그는 자신이 만든 장비로 직접 등반을 하면서 성능을 확인 시켜 주었고 홍성암씨와 함께 트랑고라는 이름의 등반장비업체에서 근무하며 개발한 등반장비들은 국산장비의 세계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알피니즘의 본고장인 유럽시장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피켈, 아이스바일, 아이젠, 하네스, 헬멧, 카라비너, 등강기 등은 코리아의 이미지를 높여주는데 일조를 했다. 그는 천부적인 손재주를 자랑하며 실생활에 필요한 소품부터 자신의 체형에 맞는 배낭이나 하네스를 직접 만들어 썼다. 이로 인해 그의 이름 뒤에는 ‘한국판 에켄슈타인’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해외의 산에서도 그가 만든 트랑고 아이스 바일은 우리의 자랑거리였다. 한국의 산을 찾은 외국인들이 그가 만든 제품을 사갔으며 외국산에서 만난 산꾼들조차도 그가 만든 장비를 부러워했다.

몇년 전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들과 중국 쓰꾸냥 쌍교구 지역에 빙폭 등반 원정을 갔을 때의 일이다. 유럽제품의 빙벽등반 장비를 사용하는 중국 클라이머들조차도 한국산 트랑고 바일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며, 기능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해외 산에서도 트랑고 제품은 우리의 자랑거리였다.

최근에는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며 ‘에코 락 프로젝트(Eco Rock Project)’라는 환경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가 산에 오르는 동안 일으켰던 기행과 일화는 수 없이 많다.

평소 광적일 만치 오징어를 즐겨 먹었던 그는 오징어 예찬론자다. 해외원정을 갈 때도 원정대 짐 속에는 오징어 뭉치가 필수로 꾸려진다.

기호식으로 즐겨먹을 뿐만 아니라 밥 대신 주식으로 2~3일 씩 오징어만을 상식할 때도 있다. 특히 등산 중에 오징어를 주식 대용으로 먹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오징어는 소화흡수가 잘되지 않아 위속에 오래 머물러 포만감을 충족시켜 줄뿐만 아니라 칼로리 함량도 높다고 한다. 또한 쉽사리 부패하지 않고 부피와 무게가 작아 휴대가 간편하다는 잇점 때문에 등산식품으로 최고의 장점을 지닌 식품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G4 원정에서도 예외 없이 그는 대장 몰래 식품구입비에서 100마리의 오징어를 구입하려다가 실수로 천 마리를 사는 바람에 대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하기도 한다.

그는 박준기 감독의 작품 G4등반 다큐멘터리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의 주인공이기도하다. 이 영화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황영순 대원과의 ‘오징어 사건’에 대한 대화는 흥미를 더해주는 일화다.

이 책을 읽어보면 체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색다른 알피니즘의 세계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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