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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산에서 찾는 정관과 소요의 즐거움
낮은 산에서 찾는 정관과 소요의 즐거움
  • 김영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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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서 ‘발견’하고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발견과 인식은 언제나 반드시 준엄하고 장대한 대자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범한 야산이라도 그것이 자연인 이상 자연으로서의 매력적인 요소가 숨어 있을 것이며, 그것이 사람에 따라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산행에서 ‘발견’하고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발견과 인식은 언제나 반드시 준엄하고 장대한 대자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범한 야산이라도 그것이 자연인 이상 자연으로서의 매력적인 요소가 숨어 있을 것이며, 그것이 사람에 따라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사진은 북한산 영봉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만경대

저산취미(低山趣味)라는 말이 있다.

낮은 산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로 처음에 일본 등산계에서 쓰기 시작했다.

저산이라면 으레 고산을 떠올리며 고산을 전제로 하는데, 그렇다고 고산취미라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등산이 원래 높은 산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리라.

산에 가는 사람들을 어떤 유파(流波)로 갈라놓기는 어렵지만, 등산에는 뚜렷한 정신과 형식이 있다보니 저산취미가 거론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의 어감에는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이것은 낮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그렇게 부르는 일은 없으며, 대개는 그들을 세속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말이다.

그런데 낮은 산을 소요(逍遙)한다고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일본에서 나온 유명한 산서 가운데 <산의 그림책·山の繪本>이라는 것이 있다. 1935년 초판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읽히고 있는 이 책의 생명은 다름 아닌 저산취미에 있다고 본다.

책을 쓴 오자끼 기하찌(尾崎喜人·1892∼1974)는 이렇다 할 학력이 없으면서 일찍이 영국·독일·프랑스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어려서부터 산과 들을 좋아하며 특히 새와 곤충과 식물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졌던 천성 자연아였다. 문학적 재능을 타고 난 그는 시적 감정이 풍부했다.

<산과 그림책>은 바로 남들이 외면하기 쉬운 평범한 자연에 대한 깊은 문학적 관찰의 소산이다. 그가 옮긴 에밀 자벨(1847∼1883)의 <한 등산가의 회상>이 훌륭한 번역서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산악문학의 극점으로 평가되는 명저를 오자끼가 유감없이 옮겼기 때문이다.

대체로 등산의 매력은 등산가를 통해서 얻는 경우가 많은데, 저산취미가 평가받게 된 데는 오자끼의 공이 크다.

일본 산악계에는 일찍부터 어려운 등로를 찾는 모험적 등반 풍조가 있었는데, 그들로부터 낮은 산의 산행을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자 오자끼는 ‘한 단독등행자의 고백’이라는 글에서 ‘나는 역시 자기에게 알맞은 산길을 간다. 그 길은 언제나 누군가 간 길로 통속적이며 시민적이다.

그러나 그런 세계에서도 어떤 예기치 않았던 발견이 있고, 깊이 생각게 하는 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산행에서 ‘발견’하고 ‘인식’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발견과 인식은 언제나 반드시 준엄하고 장대한 대자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평범한 야산이라도 그것이 자연인 이상 자연으로서의 매력적인 요소가 숨어 있을 것이며, 그것이 사람에 따라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저산취미가 고산지향과 본질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그 독특한 세계를 전개하고 유지하는 까닭이다.

이미 고인이 된 김장호(1929∼1999)의 <한국명산기>가 생각난다. 저자 자신은 이른바 고산 경험이 없는 산악인이었으나 그의 산행기는 명저 중의 명저로 우리나라 산악계의 영원한 기념탑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김장호와 오자끼는 서로 닮은 데가 있다. 즉 두 사람은 산악인 이전에 문인으로 특히 시를 좋아했으며 그들이 쓴 책까지 공교롭게도 낮은 산행 기록이다.

김장호가 가고 나서 그의 명산기 속편으로 <우리 山이 좋다>가 나왔는데, 이렇게 그가 좋아하며 줄곧 찾았던 ‘우리 산’이야 말로 한결같이 낮은 산인 것을 생각할 때, 그의 행각은 결국 저산취미였다고 해서 안 될 것 없다.

그의 산행기 특색은 발견과 인식의 기록인 데 있다. 우리 산을 우리가 같이 가면서 그와 우리 사이에는 서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그래서 한국의 평범한 저산들이 김장호의 눈과 손과 다리를 거치면서 모두 ‘명산’이 되었다.

저산취미는 단독행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단독행이라는 산행 형식은 세계등반사에서 볼 때 게오르크 빈클러(1869∼1888)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 그 원형은 어디까지나 혼자 걷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걸을 때 주위를 살피게 되고 생각이 깊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단독행은 보통 낭만적인 것으로 보기 쉬운데, 실은 비정한 미의 세계에 둘러 쌓인 고독의 경지로, 자신과 대결하는 엄하고 순수한 자기 체험의 세계다.

등산과 등산가에는 포괄적이고 다양한 세계가 있다. 그런 세계가 표방하는 것은 고산등반과 저산취미이며, 단독행과 암벽 등반을 비롯해 힐 워킹, 반데룽, 트레킹 등이다.

그리고 그 형식과 내용은 자연히 수직과 수평 두 세계로 벌어진다. 이때 수직 세계에 속하는 피크 헌팅이나 베리에이션 루트 개척을 택한 산악인들은 자신이 노리는 목표를 향해 밀어붙이고, 수평 세계를 가는 등산가들은 전자가 겪는 불안과 위험의식 없이 주위의 자연을 정관(靜觀)하며 소요한다.

등산에서 수직 세계와 수평 세계 사이에는 우열 아닌 독립된 가치가 있다.

1895년 머메리와 함께 낭가파르밧 탐사에 나섰던 노만 콜리(1859∼1942)는 ‘등산가는 산을 오르는 것 그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자’라고 간단히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초등정이니 초등반에는 으레 기록과 명예의식이 강하며, 그것이 등반자에게 구속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오늘날 등산은 제반 사회적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되길 바라는 욕구가 강하다.

등산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 도피성과 자유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완전한 해방감은 고전적 알피니즘에서 찾기 어렵다. 그런데 저산취미는 소요와 정관을 행위의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구속이나 제약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공명심과 목표의식이 없으며, 오로지 대자연의 품에 안기는 일로 시종(始終)한다.

능력과 시간에 따라 빙설에 덮인 산야와 구릉과 계곡을 소요하고, 숲과 초원에서 고독과 정일(靜逸)을 음미한다. 별하늘 아래 모닥불을 바라보며 바람과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야음에 스며드는 냉기를 느낀다. 이 태고적 시간에 인생에서 부딪쳐온 이런 일 저런 일을 떠올리고 반추한다. 이런 순간이야말로 소요와 정관의 소산이며 저산취미가 가져오는 특권이다.

고산등반에는 전문적으로 세분된 분야에 대한 빈틈없는 준비와 운영이 따르며, 이들 조건은 결국 최후의 정점으로 응집한다. 그런데 저산취미인 정관적 등산은 자연을 탐방하는 나그네의 행차로, 신의 전설과 민속, 역사와 지면 등에 관심을 가진다.

우리나라 낮은 산들을 골라 ‘명산’으로 승격시킨 김장호 산악문학의 비밀도 이와 같은 산악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저산취미를 역사적으로 묻는다면 콘라트 게스너(1516∼1565)로 소급하게 되는데, 그는 스위스의 자연과학자로 ‘산에는 감동과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게스너는 일찍부터 취미로 스위스 알프스 주변을 돌아다니고 그 즐거움을 문장으로 남긴 첫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이에 대해 고답적인 이론이나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가 산에 가는 것은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산이 있으니 가지 않을 수가 없어 갈 따름이다.

등산은 이제 우리 생활의 연장이며 그 일부다. 이러한 생활인의 등산은 산악인의 그것과 달라 시민적이고 통속적이다.

가까이 있는 산,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는 산을 찾아가 주위를 살피며 생각하고 천천히 걷는 산행이다. 정관적 등산, 저산취미의 산행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