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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에게 산은 무엇인가
산악인에게 산은 무엇인가
  • 김영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1.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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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산책과 접하고 산사람들과 만나면서 근자에 새삼 느껴지는 것이 있다. 산악인에게 산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고 물음이다.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이상하게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얼마전 알피니즘에 관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열띠고 심각한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혼자 우리에게 산이란 무엇인가 생각했다. 산과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길고 긴 역사를 나름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저 넘어갈 수가 없었다.
반평생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이는 곳에 살다가 후년에 수락산 자락으로 옮기며 언제나 산이 보이는 것이 늘 주거를 정할 때 조건이었다. 산에 오르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였다. 산은 볼수록 좋고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인공이 아니고 천연이어서 그럴까.
산은 자연의 대명사로 되어있다. 산·천·초·목 넉자가 자연을 말하고 있지만 거기에서도 산이 자연의 대표격인 것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산은 단순한 돌과 흙의 덩어리가 아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하나의 상징이고 비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산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그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본다. 사람에 인격이 있듯이 산에 산격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고전·명저의 하나로 되어있는 <일본백명산>의 저자는 산을 고르며 이 산격에 주목했다. 그가 그들의 최고봉으로 누구나 오르려고 하는 후지산(3778m)을 빼면서 우리 백두산(2744m)을 세계100명산 속에 넣은 것도 오직 그 산격을 보고 했으리라.

2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등반사는 알피니스트들이 산과 싸운 기록이다. 미지의 고봉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매력에 끌려 정열과 투지를 쏟았던 과정이다.
2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등반사는 알피니스트들이 산과 싸운 기록이다. 미지의 고봉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매력에 끌려 정열과 투지를 쏟았던 과정이다.

알피니즘이라는 새롭고 색다른 인간문화가 그 옛날 서구사회에서 시작한 데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산이라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등산 선진국이고 우리는 뒤늦게 산을 알았지만 세상이 하나가 되고 국제사회가 되다시피 한 지금도 그들과 우리 사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른바 등산문화에서 느껴진다. 우리가 세계 무대에 진출하고 같은 자연을 상대로 같은 장비와 별 차이 없는 기술로 활동하고 있는 작금이다. 기록면에서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이질적이고 미흡한 느낌이 있다. 외모는 같은데 내면에서 그러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면 하나의 편견일까.

등산이란 산을 오르는 일이다.

그런데 산악인으로 그들 선진과 우리 후진의 생각과 태도가 다른 것 같다. 한마디로 그들은 산을 보는데 우리는 산에 오르기만 한다고나 할까. 산악인에게 산은 전제고 등산은 예상이다. 산을 보지 않고 오르기만 하면 그것은 정도가 아니고 외도나 다름없다. 알피니즘의 정신에서 멀리 이탈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설악산을 기를 쓰고 오른다. 누구나 오르는 대청봉에 나도 서고 싶어서다. 좋은 일임에 틀림없는데 여기 궁금한 것이 있다. 그들은 올라가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고 내려오는가.
설악의 어프로치는 길도 풍치도 다양하다. 다만 정상에서의 감회와 소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며, 그것도 일반 등산 애호가와 산악인과는 큰 차이가 있음직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산악인이라고 할 수가 없지 않을까.
“산악인은 저마다 산에 고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사람은 일본 산악계의 선구자였지만, 그 옛날 에드워드 윔퍼는 마터호른 초등 때의 대참사로 오랫동안 알프스를 떠났다가 노후에 마터호른이 그리워 돌아왔으며, 프루겐 산릉을 초등한 귀도 레이는 마터호른을 잊지 못해 노후에 마터호른이 잘 보이는 곳에 산장을 세우고 혼자 조용히 살았다. 보나티 역시 자기 생애에 걸친 등반기를 정리하며 끝장에 몽블랑을 다시 찾은 이야기를 잊지 않았고, 가스통 레뷔파는 <별과 눈보라>에서 그랑드 조라스가 저녁놀에 빛나고 있는 장엄한 모습을 산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와같은 이야기는 모두 반세기도 훨씬 전의 서구 알피니스트들이 산과 대하던 모습이다. 근자에 히말라야 자이먼츠 14봉을 무산소로 오른 첫 여류 등산가, 칼텐 브룬너의 책을 펼치다 눈이 간 것이 있다. 베이스캠프 주변에 야생화가 반발하고 가까이 내가 흐르며, 저녁놀에 아마다블람이 어딘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고 했다. 극한적인 원정에서 어떻게 그러한 주변에 눈이 갔는지 새삼 놀랍다. 하기야 순간을 모르는 극적인 인생 한가운데 있다보니 더욱 주위의 모습이 그토록 그녀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그 많은 산악인들 입에서 쿰부 빙하 가까이 있는 만고의 고요를 간직한 빙하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 곳은 1952년 스위스 원정대가 모든 것이 불확실 했던 당시 베이스캠프로 삼았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산악인은 일반 사회인과 다르다.

그들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특권의식을 나는 긍정하고 싶다. 그정도의 자부와 긍지가 없이 우리는 이른바 한계도전이니 죽음의 지내 이야기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싶다. 산악인은 무조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산을 보아야한다. 즉 산악인은 알피니스트인 동시에 휴머니스트며 더욱 나투어킨트(자연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도전자만으로서는 의미가 없다. 그 옛날 토니 히벨러는 마터호른과 친숙해지려고 르마트에 일터를 마련했다. 볼수록 그 북벽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 산악인들은 멀리 히말라야 오지를 다녀오며 많은 체험을 했다. 남다른 소중한 체험들을. 높이 2000m도 안되는 저산지대에서 자란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더욱 놀랍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성취는 분명한데 남은 것이 불투명하다. 고작해서 산행보고서고 멋진 등반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산행보고서와 등반기는 다르다. 전자는 단순한 행동기록이고 후자는 산과의 접촉기록이다. 여기에는 산과 자기와의 관계 즉 그 자연에 몰입했던 자기 인생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야한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되어있는 에드워드 윔퍼의 <알프스 등반기>에 나오는 짤막한 한토막의 글은 산악계 거인 윔퍼의 남다른 인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이런 글이다.

‘극이 끝났다. 막이 내린다. 독자와 헤어지기에 앞서 산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말하고 싶다. 저 높은 산을 보라. 아주 먼 곳에 있다. ‘오를 수 없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더라. 그러나 등산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확실히 멀다. 오르기 어렵고 위험할는지 모르나 할 수 있으리라. 길이 있을테지. 산친구들을 만나서 그 산에 오른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위험을 피했는지 알아보자.’ 세상 사람들이 밑에서 잠자고 있을 때 등산가는 산으로 떠난다. 길이 미끄럽고 힘이 들 것이다. 그러나 신중과 인내가 승리를 얻어낸다. 마침내 정상에 오른다.’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은 19세기 후반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당시의 등반기가 영원한 산악 문헌의 하나로 남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의 글을 읽지 않고 자기 것도 남기지 않는 오늘의 우리 처지를 새삼 생각한다. 진정한 모험과 개척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낱 모방이다. 그리고 산악인의 의식과 행위는 언제나 독창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독창성은 각자의 재산이다. 나는 그들의 독창성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