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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F2019] 영화리뷰-마나슬루 영혼의 산
[TFF2019] 영화리뷰-마나슬루 영혼의 산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9.05.05 0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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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하지만, 8000미터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해야겠다.

1953년 에베레스트 등정은 그곳이 세계 최고봉이니 별개로 생각하더라도 1950년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대한 ‘인류 최초 8000m’라는 수식은 어떤 분위기 속에 생겨났을까.

해답은 안나푸르나를 초등한 국가인 프랑스에 있다. 대혁명 이후 혼란한 사회의 통합을 위해 도량형 통일을 주장하며 19세기 말 미터법을 국제 강제조약으로 만들기까지 한 프랑스는 기존 영국과 미국에서 사용되어온 ‘야드파운드법’으로 하면 26545피트로 마땅히 특색 없는 안나푸르나를 손쉽게 8000미터급 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안나푸르나가 초등되던 해 세계적으로 미터법을 쓰는 나라는 32개국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커트라인으로 볼 때 8천 미터 이상 되는 산이 14개라는 것은 서구 열강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이른바 14봉 ‘초등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마나슬루-영혼의 산 포스터
마나슬루-영혼의 산 포스터

 

이렇듯 인간은 스스로를 어떤 정형화된 틀에 속하게 할 때 안도하는 걸까. 이러한 틀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할 산정의 알피니스트조차도.

‘14봉’의 무대에 오른 이들 중 단연 최고의 스타는 라인홀드 메스너였다. 그리고 그의 옆엔 언젠가부터 한스 캄머란더(1956~)라는 이름이 따랐다.

2018년 가을 유럽에서 개봉하고 이번 트렌토 산악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한 영화 <마나슬루-영혼의 산>은 이러한 8천 미터 14봉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이를 거부한 한 산악인에 대한 이야기다.

남티롤 볼차노에서 목동의 아들로 태어나 8살 때 우연히 지나는 하이커를 뒤쫓아 동네 뒷산인 무스 스톡(Moos-stock, 3059m)을 오른 한스는 10살 때 어머니를 여읜 뒤 더욱 산에 빠져들었다.

어린 한스가 마주한 첫 번째 죽음, 그리고 영화는 줄곧 '죽음'이라는 어느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며 티베트의 만다라를 전개의 도구로 삼는다.

이른바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를 담아냈다는 만다라. 허나 가장 완벽하게 정형화된 그 모습, 그리고 허물어짐과 공(空)으로의 소멸.

치마 피콜로를 단독등반 중인 젊은 날의 한스 캄머란더

 

사촌형에게서 기초 등반기술을 배우며 평일에는 타워크레인 기사로 일하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돌로미테 치마 피콜로 단독등반으로 뿜어내던 청년 한스 캄머란더는 결과적으로 동네 산 선배인 라인홀드 메스너를 따라 1983년 초오유 남벽을 등정하며 히말라야로 발을 내딛고, 1986년 로체에서 그의 위대한 마지막 여정까지 함께 한 이후 8000미터급 산 13개를 올랐다.

그중에서도 1984년 파키스탄 가셔브룸 1, 2봉 연속등정은 세계인의 이목을 끈 이벤트이기도 했는데, 8천미터 고봉 두 개를 6일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하겠다는 계획과 실행은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이 등반에서 크레바스 추락과 죽음의 공포를 겪은 한스는 산을 내려오는 마지막 밤 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기척에 환각에 시달리는 경험을 한다.

1996년 한스 캄머란더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등반과 스키활강은 그에게 만다라의 완성이었다.

당시 북릉-북동릉 루트로 16시간 40분 만에 정상에 오른 그는 기네스 기록과 함께 에베레스트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온 영웅이 되었다.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등정에 성공한 한스.

 

하지만 그의 등반 며칠 전 하산 중 조난당한 인도 원정대와 아직 생명이 붙어있던 그들을 구조하지 않고 지나쳐 등반한 일본 원정대의 사건에서 산악계는 8천미터의 윤리에 대한 거센 논쟁이 벌어졌고 한스 역시 인도 팀의 시신을 넘어 정상에 섰다.

에베레스트에서 한스가 완성한 만다라라는 세계의 한쪽에서는 무한한 소멸이 공존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스키 하산 중 암벽구간에서 추락하며 장갑 한짝을 잃어버린 그는 인도인의 시신에서 장갑을 벗겨 끼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온다.

2001년 세계 2위봉 K2를 등정하며 한스 캄머란더는 14봉 중 이제 마나슬루 하나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K2 등정 때에도 스키활강을 준비했던 그이지만 당시 박영석 원정대에서 등정 후 하산중추락 사망한 박영도 씨의 죽음을 보곤 한스 캄머란더는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로 스키활강 기록을 포기했다.

타인의 죽음은 그곳이 어떤 곳, 어떤 상황이라도 단 한마디, 단 하나의 몸짓도 쉬이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스는 이야기한다.

에베레스트 등반 중

 

마나슬루는 이미 1991년 시도했던 산이지만 그에겐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경험했던 곳이다. 한스는 이 산에서 함께 로프를 묶었던 프리틀 뮤추레이너와 칼 그로스바쳐를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

당시 칼은 세락 붕괴로 인해 추락했지만 그날 밤부터 몰아쳐 프리틀을 앗아간 거대한 악천후와 낙뢰의 원인이 당시 쿠웨이트 유전의 화재 때문이라는 건 나중에 밝혀진 일이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히말라야 만년설산에서의 지옥 같은 낙뢰 속에서 다시 죽음을 마주한 한스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 중인 한스 캄머란더(왼쪽)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 중인 한스 캄머란더(왼쪽)

 

14봉의 프레임, 그리고 마치 그것이 인생이라는 만다라의 완성이라 생각했던 젊은 날의 한스 캄머란더, 이제 살아갈 날보다 지나온 날이 많은 60대 중반의 장년으로 다가선 그는 스스로 만다라를 부수고 어릴 적 처음 올랐던 그 산에 다시 오르며 자신의 걸음을 13봉에서 멈춘다. 

<마나슬루-영혼의 산>은 고산등반 경험이 있는 기자가 봐도 굉장히 사실적인 재현과 우리가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산악영화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한국 개봉 예정이니 놓치지 말고 꼭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