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9 13:32 (목)
왕도는 없다, 살아가고 등반하고 반복했을 뿐
왕도는 없다, 살아가고 등반하고 반복했을 뿐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9.06.17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수봉 찾은 세계 최고 여성 트래드 등반가 헤이즐 핀들레이

“한국은 항상 궁금하고 꼭 와보고 싶던 곳입니다. 늘 아시아 문화에 대한 동경과 특히 남한과 북한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어요. 그동안 중국이나 동남아의 암장들은 가봤지만 한국은 그곳들과는 다른 색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인수봉 취나드A 코스를 등반 중인 헤이즐 핀들레이 ⓒ강레아
인수봉 취나드A 코스를 등반 중인 헤이즐 핀들레이 ⓒ강레아

인수봉을 찾은 영국 여성 클라이머 헤이즐 핀들레이(Hazel Findlay, 30)는 여유로웠다. 현재 ‘영국 최고의 여성 등반가’로 불리는 그는 아버지를 따라 7살 때부터 등반을 시작해 십대 때 대부분을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로 지냈다. 하지만 16살이 되자 트래드 등반만을 하기로 하고 선수생활을 끝낸 뒤 지금까지 최고 5.14c급에 이르는 전통적인 등반에 성공했으며, 이런 공로로 지난 2013년 미국 『클라이밍』 지는 골든 피톤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번 방한은 대략 2년 전부터 준비되었는데, 블랙다이아몬드의 후원을 받고 있는 그녀는 매년 세계 각지의 등반지 리스트를 본사에서 받아 대상지를 고른다. 그중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10여일 간의 방한기간 중 인수봉과 설악산에서 전통적인 루트를 등반하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등반 중 멘탈 강화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해 한국을 찾은 것이다.

“왜 등반하는가?”라는 질문에 헤이즐은 “좋아하니까, 등반을 사랑하니까, 그리고 등반을 통해 나와 타인에 대해 배우고 또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여기 덧붙여 “등반 중에는 마치 명상을 하듯 생각이 단순해지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헤이즐 핀들레이는 영국난이도 E9, 요세미티 난이도 5.14c급 트래드 등반에 성공한 바 있는 세계 최고 클라이머다. ⓒ강레아
헤이즐 핀들레이는 영국난이도 E9, 요세미티 난이도 5.14c급 트래드 등반에 성공한 바 있는 세계 최고 클라이머다. ⓒ강레아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녀가 등반가들의 멘탈 강화에 있어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다.

“누구나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생각하면 됩니다. 먼저 마인드 셋(mind set)입니다. 등반을 할 때 자신의 태도, 나는 등반을 왜 하는가, 등반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런 기준에서 비롯되는 태도를 먼저 규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인드 툴(mind tool)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공포를 떨쳐내고 집중할 것인가, 그 방법에 관한 것이지요.”

그녀가 등반한 루트들은 등반 난이도로 치면 일반 스포츠 루트에서 이정도 등급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실제로 스포츠루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이 있는 곳이다. 적어도 추락하면 목숨을 걸어야하는 곳들도 많다. 이런 가운데 그녀가 위험을 극복해온 과정에 대해 물었다.

“어려운 루트를 앞두고 무수한 연습을 했고, 추락해도 가급적 위험을 낮추도록 확보물을 잘 설치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겁이 나면 몸이 굳고, 할 수 있는 동작도 못하게 되죠. 당시엔 제가 멘탈 코칭 강연을 하기 전이었지만 늘 생각을 했고 점차 경험을 쌓아갔습니다.”

왕도는 없었다. 타고난 것도 없었다. 그저 살아가고, 등반하고, 반복했을 뿐이다.

헤이즐 핀들레이(가운데)와 함께 한국을 찾은 콜렛 멕키너니(왼쪽), 인수봉을 함께 등반한 역시 한국 최고 여성 등반가 이명희(오른쪽) 씨. ⓒ강레아
헤이즐 핀들레이(가운데)와 함께 한국을 찾은 콜렛 멕키너니(왼쪽), 인수봉을 함께 등반한 역시 한국 최고 여성 등반가 이명희(오른쪽) 씨. ⓒ강레아

 

헤이즐은 이번 방한 중 선운사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를 했던 경험이 새로우면서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스님이 ‘너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어요. 대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계속 생각할 것입니다.”

이미 세계적인 등반가의 반열에 오른 그녀에게 책 한권 써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한 50살쯤 되어서 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나서 쓴다면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지금 제 이야기를 궁금해 할지 모르겠네요. 몇 번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적은 있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인수봉 취나드A 코스를 사뿐사뿐 걸어 올라갔다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