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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용대가 읽어주는 프리솔로 극한의 세계
[서평]이용대가 읽어주는 프리솔로 극한의 세계
  •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승인 2019.07.0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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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솔로』알렉스 호놀드/데이비드 로버츠. 조승빈 옮김. 하루재 클럽
알렉스 호놀드
알렉스 호놀드

 

2017년 6월 3일 요세미티 최고의 거벽 엘 캐피탄의 ‘프리라이더(5.12d)’를 맨몸으로 3시간 56분 만에 오른 간 큰 사람이 있다. 경천동지할 이 등반으로 그는 세계 산악계에 큰 파문을 던졌고 세계최고의 프리솔로 클라이머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린다.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가 유명해진 이유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가장 극단적이고 위험한 등반스타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900여m 수직의 암벽을 로프 없이 맨몸으로 오른다는 것은 스턴트맨이나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놀랄만한 등반은 실제로 미국의 33세의 클라이머 알렉스 호놀드(이하 호놀드)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방호장비나 로프도 쓰지 않은 채 동료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암벽등반이 지닌 모험성과 도전성을 극대화하며 위험을 극복하는 프리솔로 등반을 성사시켰다.

호놀드의 등반능력은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그는 LA 동쪽 조슈아트리의 화강암 볼더와 피너클에서 수많은 훈련을 하면서 프리솔로에 대한 강한 열망을 키워왔다. ‘연습벌레’라 불릴 정도로 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호놀드다. 그는 하루 평균 50피치(5.10급 정도)의 등반 훈련을 소화해낸다.

 

프리솔로(Free Solo)란 로프와 파트너의 도움 없이 맨 몸으로 하는 등반을 말한다. 장비는 암벽화와 초크백이 전부이며, 장비를 보호기구로 사용하지 않는 등반이다. 이것은 등반의 가장 원초적인 도전 행위로 본다. 즉 발에 암벽화만 신고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손가락 끝에 초크만 묻힌 채 벽에 대항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프리솔로는 가장 순수한 등반형태라 할 수 있지만 등반도중에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등반이다. 등반 중에 홀드가 부서진다든가 홀드를 놓치거나 비가 뿌린 바위에 미끄러져 추락사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등반을 하는가?”라고 묻지만 그는 그다운 재치로 응수한다. “추락사는 제 인생최악의 4초가 되겠죠? 아마도 그는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죽었다고 말할 것이고, 나머지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실제로 호놀드가 활동해온 그동안의 기록을 살펴보면 프리솔로가 차지하는 비율은 몇 퍼센트이내다. 그는 오로지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만 프리솔로로 등반한다고 한다. 그가 이룩한 프리라이더 프리솔로는 9년 동안 준비해온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그는 그동안 프리라이더를 로프를 사용해 50회나 오르며 수많은 동작과 바위의 상태를 암기했다. 프리솔로는 뛰어난 체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프리솔로 도중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한 번도 가져 본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프리솔로 등반 중 공포를 떨쳐버리는 방법은 두려워지지 않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연습한다고 말한다.

알렉스 호놀드의 프리솔로 등반은 얼마 전 KBS에서『프리솔로』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적이 있다. 이 책에는 2019년 오스카상 장편 다큐멘터리 상 수상작인『프리솔로』촬영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장편다큐멘터리 『프리솔로』는 알렉스 호놀드가 2017년 엘캡의 프리라이더 루트를 프리솔로로 등반하는 내용이다.

최고의 산악영화라고 호평 받은『프리솔로』촬영 과정을 상세하게 활자로 확인해주는 것 또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특별한 보너스다.

이 책은 알렉스 호놀드의 등반과 삶을 리얼하게 조명하고 있다. 그는 지금 여러 미디어 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클라이머로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등반이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되어가고 있는 지금 특히 프리솔로라는 분야에서 만큼은 아직 호놀드를 능가할 만한 사람은 없다. 극한의 모험등반 이야기가 한치의 가감 없이 손에 땀을 적시게 하는 생생한 묘사로 펼쳐진다. 장비나 파트너의 도움 없이 1mm정도의 돌출 홀드에 온 몸의 무게와 목숨을 걸고 한계를 열어가는 천재 클라이머들의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읽을거리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누구나 프리솔로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0년간 극소수의 클라이머들이 프리솔로등반의 가장 위험한 수준까지 자신을 밀어붙였지만 그중 절반은 죽었고 일부만 심연 위에서 춤을 추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죽은 사람들도 많다. 데릭허시는 살라테 루트 등반 중 사망했고, 1980~90년대 피터 크로프트와 함께 프리솔로 등반의 쌍두마차격인 존 바차도 35년간 수많은 루트를 프리솔로로 등반해왔지만 캘리포니아의 집 근처에 있는 짧고 익숙한 루트를 등반하던 중 추락하여 황천길로 갔다.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등반이 가능한 루트에서 추락사했다.

리어든은 아일랜드 해벽에서 프리솔로로 클라이밍 다운을 끝내고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죽었고, 오스만은 자신이 착안한 새로운 극한 스포츠인 로프 점핑을 시도하다 죽었다. 그는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서 요세미테 리닝타워 300m 위에서 뛰어내리다가 로프가 끊어져 사망했다.

1954년 돌로미테 1000m가 넘는 거벽 13개를 16시간 만에 단독등반으로 마무리한 이탈리아의 체사레 마에스트리도 이런 방식의 등반을 선호했던 등반가다.

이런 방식의 등반은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이름만 달랐을 뿐 이미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1911년대 돌로미테와 서부알프스를 중심으로 300여 회의 단독등반을 이룩한 파울 프로이스도 1913년 만틀코겔 북벽에서 추락사할 때까지 이런 방식의 등반을 선호했다.

이처럼 극한 등반의 모험 중 부상이나 죽음으로 등반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호놀드는 부상으로 등반을 중단한 적은 없었다. 시애틀의 5.9급 암장에서 톱로핑 등반 중 애인의 그리그리 확보기구 조작 실패로 척추 압박골절의 부상을 입고 그녀와 절연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재활훈련을 통해 회복한다.

이 책은 표지사진부터 소름을 돋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프돔(Half Dome) 북서벽의 30센티미터 너비의 ‘생크갓 레지(Thank god Ledge)’위에서 아무런 확보도 없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직립한 자세로 휴식하는 알렉스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가 서서 휴식을 취하는 지점은 약 900여m의 고도다. 이 레지는 북서벽 전체 23피치 중 정상 직하 약100미터 아래 21피치에 위치한 길이 15m의 좁은 레지로 담력이 큰 사람이 아니고서는 대개는 엉금엉금 기어서 통과하는 지점이다.

프리솔로 표지의 장면인 하프돔 생크갓 레지를 기어서 통과하고 있는 강구영(요델산악회) 씨. 1980년 이영식, 허정식 씨 등 3명이 이곳을 한국 처음으로 등반했다.  

 

호놀드는 프리솔로 등반에 중요한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클라이머다.

2016년 1월 그는 콜린 헤일리와 함께 3년 연속으로 찾은 파타고니아의 토레 트레버스에 성공한다. 그 둘은 한 번도 추락하지 않은 채 밤 12시에 정상에 도착. 20시간 40분 만에 등반을 끝낸다. 이 등반으로 헤일리와 호놀드는 2017년 황금피켈 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다. 이때 한국 팀의 강가푸르나 남벽 코리안 웨이팀의 김창호, 최석문, 박정용도 같은 상을 수상한다. 토레 트래버스(Torre Traverse)는 수직의 높이 3950m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총연장 5600m의 바위, 눈, 얼음을 통과하는 트래버스다. 훗날 많은 클라이머들은 이 두 사람의 트래버스를 ‘최첨단 알피니즘’이라 평했고, 평소 칭찬에 인색한 롤란도 가리보티(세로토레 북벽 초등대원. 1959년 마에스트레 초등 주장을 일거에 와해시켰으며, 이 지역에 관해서는 세계최고의 전문가)조차도 “존경하고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라고 극찬했다.

2016년 여름 호놀드는 아이거 북벽에서 프리솔로로 속도기록을 세웠고 엘캡의 골든게이트를 온 사이트로 등반한 ‘스위스 머신’이라 불리는 유럽 최고의 프리솔로 등반가 율리스텍과 만나 엘캐피탄 프리솔로 등반을 위한 훈련프로그램에 대해 그의 조언을 듣는다. 그는 골든게이트를 오르기 위해 최고난이도 5.13b/c를 하루에 열 피치 등반했다고 한다.

율리스텍은 자신의 한계가 5.13d이지만 프리솔로는 5.13b를 등반한다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에 아주 가까운 수준까지 프리솔로를 한다는 의미다. 유럽과 미국의 두 프리솔로 거장들의 만남은 2017년 눕체에서 율리스텍이 1000m를 추락사해 호놀드는 두 번 다시 그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호놀드는 엘 캐피탄의 노즈에서 2시간대의 기록을 깨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그는 2018년 6월 6일 마침내 토미 콜드웰과 노즈를 1시간58분7초에 올라 최초로 2시간대의 장벽을 깨는 속도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이 탄생하기 전까지 노즈에서 일어난 속도등반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1975년 짐 브리드웰과 존 롱에 의해 노즈가 하루 만에 등반되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뒤이어 1979년 프랑스의 르노가 13시간대로 줄였고 이 기록은 5년 후인 1984년에 또 바뀐다. 영국의 던컨과 스위스의 보글러가 9시간 반의 새 기록을 세우고 1990년엔 장대높이뛰기 선수인 플로린이 8시간6분을 기록 그 후 데이브 슐츠가 6시간40분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통상의 몇 시간에 조금 못 미침보다는 이제는 분단위로까지 측정되고 있다. 1991년 플로린은 6시간 1분을 기록했고, 1992년 다시 4시간 22분의 기록을, 2001년 포토 오닐은 3시간59분35초를 기록한다.

이처럼 해를 넘길수록 등반속도가 단축되고 있는 가운데 호놀드의 프리솔로와 속도등반은 현재진행형이다. 이후 더 많은 경이적인 기록이 탄생할 것이다.

지금 화강암 거벽 엘 캐피탄의 노즈는 개척시대의 낭만을 뒤로하고 스포츠게임 같은 기록경신의 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빨리 오르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오늘의 호놀드는 단순한 프로 클라이머가 아니다. 이제는 사회공헌을 위해 호놀드 재단을 설립했고 개조한 밴에서 생활하는 더트백(dirtbag) 클라이머를 넘어선 성숙한 사회인이 되어있다.

그가 이룩한 등반성과는 놀랍다.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그의 등반기록 몇 개를 읽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지만 분명한 것은 호놀드가 광적이거나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