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5-21 12:07 (화)
미스 홀리의 마지막 인터뷰... "명예는 필요치 않아"
미스 홀리의 마지막 인터뷰... "명예는 필요치 않아"
  • 곽정혜 기자
  • 승인 2018.01.26 23: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6년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 딴 '피크 홀리' 명명에 "정신 나간 짓" 일갈
-히말라야 데이터베이스는 내 생에 가장 자랑스러운 일... 끝까지 버티고 외길 걸으면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
엘리자베스 홀리
엘리자베스 홀리

1월 26일 타계한 엘리자베스 홀리(1923~2018)는 1960년부터 카트만두에 살며 로이터 통신 특파원으로 지금까지 모든 히말라야 원정대를 인터뷰하고 기록을 남겨왔다. 어떤 등산 매체보다도 홀리의 기록과 한 마디는 권위 있게 받아들여져 왔으며, 때문에 산악인들은 한편으로 네팔 정부와 정부연락관의 기록보다도 홀리와의 인터뷰를 신뢰하기도 했다.

이렇게 홀리의 기록이 권위를 갖게 된 이유는 그가 철저한 기자 정신으로 날카롭게 질문하고 불편부당한 균형감각으로 모든 것을 남겼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홀리가 타계하기 2년여 전인 2016년 3월 11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벤 에이어(Ben Ayers)는 카트만두에서 그녀를 인터뷰했다.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된 이 대화에서 홀리는 네팔 정부가 자신의 이름을 딴 봉우리를 명명한 것에 대해 “정신 나간 짓”이라고 일갈하며 특유의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묻는 질문에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명예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엘리자베스 홀리는 “어떤 일에 빠져 꼼짝 못할 땐 끝까지 버티라, 당신이 해놓은 일은 사람들에게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생을 히말라야의 기록자로 살며 현대 히말라야 등반사를 만들어온 홀리는 이제 스스로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1월 28일 카트만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홀리의 장례식에는 그의 조카 마이클 엘리자너 레너드와 수많은 네팔인들이 참석해 애도했다. 사진 네팔등산협회(NMA)
1월 28일 카트만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홀리의 장례식에는 그의 조카 마이클 엘리자너 레너드와 수많은 네팔인들이 참석해 애도했다. 사진 네팔등산협회(NMA)

 

◎아래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원문링크) 전문.

히말라야 등반에서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92세의 미국인 여성이다. 엘리자베스 홀리(대개 ‘미스 홀리’로 불린다)는 네팔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된 직후부터 지금껏 네팔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는 히말라야 등반의 충실한 기록자였지만, 곧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 위에서 일어나는 주목할 만한 사건들 사이에서 명실상부한 권위자가 되었다.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은 높고, 위험하고, 추우며, 또한 외롭다. 몇몇의 야심만만한 등반가는 사람들이 목격하지 않을 때 진실을 왜곡하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홀리를 피해 다니곤 했다. 비록 미국 버몬트 주의 맨스필드 산보다 더 높은 곳엔 올라가본 적이 없지만(더구나 이 산은 카트만두에 있는 그녀의 집보다 60m나 더 낮다!) 단언컨대 홀리는 지구의 가장 눈에 띄는 봉우리들과 그 봉우리에 오른 사람들, 그리고 더욱 많은 정보들에 대해 꿰뚫고 있다.

2014년 네팔 정부는 등산 사업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사며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지만, 미스 홀리는 그 일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본지는 최근에 카트만두에 있는 미스 홀리의 집에서 등산과 네팔의 산악계, 홀리 피크 등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나누었다.

 

Q. 당신의 이름을 딴 봉우리를 갖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굉장한 명예로 생각되는데요. 당신은 그 봉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그들이 발견한 그 산에는 이미 ‘포타 노스(Pota North)’라는 이름이 있었어요. 산의 높이는 6182m로, 우리에게 ‘푸타 히운출리’로 잘 알려진 산의 북봉이에요.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 산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이름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피크 홀리(Peak Hawley)’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Q. 그래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A.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농담이어야 했어요. 그 산에는 원래 완벽하게 좋은 이름이 있었어요. 그리고 사람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지어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 사람이 살아 있든 죽었든 간에요. 지금은 그냥 정신 나간 짓이라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추후에 어떤 등반대가 피크 홀리를 등반하면, 그들의 기록을 남길 때 원래의 산 이름을 쓸 건가요?

A. 예를 들어, 미국은 이제 공식적으로 매킨리(주 : 미국의 25대 대통령) 산의 이름을 (데날리로) 바꾸었어요. 이젠 아무도 매킨리라고 하지 않지요. 어쨌든 그는 대단한 대통령도 아니었고, 곧 잊혀졌죠. 사람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을 지어서는 절대 안 되요.

 

Q. 그것은 무척 강력한 발언인데요,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나요?

A. 대부분의 히말라야 산들은 완벽하게 훌륭한 현지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네팔 정부는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를 부르는 현지 이름 중 하나)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서 붙인 거죠. 네팔인들은 그 당시 히말라야를 ‘신들의 거처’로 보았고, 신들의 집에서는 그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 산이나 신들에게 푸자(puja, 기도 또는 제사)를 하고, 그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죠.

 

Q. 많은 산악인들이 당신과 당신의 업적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라고요.

A. 네. 제가 그들을 두렵게 했죠. 저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죠. 물론 그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Q. 당신의 이름을 딴 봉우리를 갖게 된 게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A.<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을 도운 것입니다. 사실 데이터베이스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실제로는 미국 미시간 주 앤 아버(Ann Arbor)에 사는 리처드 셀즈버리(Richard Salsbury)가 생각한 거에요. 그는 내가 1960년부터 써온 기록들을 보았고, 내가 가진 기록물들이 데이터베이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도 그의 생각과 같았죠. 무척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기록을 남겨야겠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머리를 모아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어요. 그게 1960년대 중반이거나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어요.

 

Q. 당신은 1960년에 네팔에 와서 쭉 여기서 살았습니다. 당신을 이곳에 붙들어놓은 게 뭐라고 생각하나요?

A. 그저 ‘관성(또는 습관)’인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이 일을 막 시작했어요. 로이터 통신의 주재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원정대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그 일은 무척 가치 있어 보였고, 또 그 중 일부는 실제로 그랬어요. 사람들은 그 데이터베이스가 무척 유용하다는 걸 알게 됐죠. 당신도 어떤 일에 빠져 꼼짝 못할 땐 끝까지 버티세요. 당신이 해놓은 일은 사람들에게 영원할 것입니다.

 

Q. 그것이 당신의 목표인가요?

A.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살아왔어요.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순간을 맞게 되죠.

 

Q.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A. 아니요. 저는 기억되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Q. 많은 산악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산을 갖게 된다면 흥분할 것 같은데요….

A. 아마 그렇겠죠. 그러나 저는 명예라던가 그 이상의 것을 얻는데 야망이 없습니다. 명예, 그건 무척 좋은 거죠. 그리고 감사한 일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게 필요하지 않군요.

 

Q. 자신이 등반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A. 전혀요. 제가 올라본 가장 높은 산은 버몬트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맨스필드 산(1339m)이었어요. 그러나 그건 그저 꼭대기에 올라가 멋진 경치를 구경하는 트레킹에 불과했죠. 그렇지만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이유가 멋진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Q. 네팔 등산계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건 좀 불확실한 질문인가요?

A.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몇몇 네팔인들, 그들의 대부분은 트레킹 대행사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같은 업종에 있는 네팔 내 외국인들의 회사를 인수해서 내쫓고 싶어 해요. 그러나 만약에 진짜로 그렇게 한다면 모든 게 무너질 겁니다. 그 외국인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중 하나를 꼽으면, 그들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클라이머를 발굴해내는 겁니다.

 

Q. 그렇다면 네팔의 등산 사업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더 낫다는 게 뭐죠?

 

Q. 음... 네팔의 등산이 개선될 수 있는 방법이요.

A. 뭐보다 더 좋은지, 언제보다 더 좋은지? 정확하게 뜻하는 바가 뭐죠?

우리가 아는 ‘네팔의 초창기 등산’은 영국의 에베레스트 등반입니다. 그건 한마디로 실패작이었죠. 우선 그들은 자신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을 거예요. 그 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거죠. ‘셰르파’ 같은 조직적인 도움도 없었고요. 산을 찾아 다르질링을 거쳐 돌아오는 길고도 끔찍한 여정 속에서 살아남느라 무척 고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게 꼬박 한 달이 걸렸죠. 그런 트레킹을 하느라 좋은 날씨를 낭비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뭐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건가요? 대답하기에 무척 어려운 질문이네요.

 

Q. 우선, 지난 2년간 에베레스트에서 3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어요.

A. 네. 맞아요. 그러면 여기 카트만두에서는 지진 때문에 몇 명이나 죽었을 것 같나요?

 

Q. 그렇다면 당신은 등산 사업이 더 안전할 수도 있고, 더 잘 규제될 거라고 보시나요?

A. 이것 봐요. 네팔에서 무언가를 규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먼저, 그 감독관이 되려는 이들조차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몰라요. 그리고 그 감독관들은 누가 감독하죠?

-번역 곽정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