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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머메리즘의 기원에 대해
[칼럼] 머메리즘의 기원에 대해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9.08.12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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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메리즘(Mummerism)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산악계에서 한동안 자주 사용되어왔다. 이 단어는 마치 어떤 사상이자 주의(主義)와도 같은 이미지로 굳어 ‘더 어렵고 힘든 것을 스스로 택하는’ 뜻으로 정치와 언론, 사회 각 분야에까지 인용되고 심지어 노래도 나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등산을 하며 머메리즘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행위를 따르지 않는 것은 가치가 없는 일처럼 여겨져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언제부터 어떻게 알고 사용해왔는지, 그 어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비슷한 뜻으로 10여 년전 ‘등로주의(登路主義)’라는 말이 한창 유행할 때 프랑스의 몽따뉴와 일본 산과계곡 편집장에게 메일을 보내 머메리즘이나 등로주의라는 말을 쓰냐고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거였다. 한자를 쓰는 일본에서도 ‘등로주의’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다만 산과계곡은 친절하게도 창간 때부터 현재까지 자료를 다 뒤져 1930년대 중반 잡지에 머메리즘이라는 단어가 잠깐 등장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쓰지 않는다고 했으며 그게 당시 일본과 가까웠던 독일 산악계에서 전해진 말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 말들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더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무어냐 물었더니 ‘베리에이션 클라이밍’이라는 대답이었다. 결국 머메리즘이나 등로주의와 같은 아무도 쓰지 않는 이상한 말이 우리 산악계를 주도하는 유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터넷이 그때보다 많이 발달한 지금, 이건 당장 구글 검색을 해보면 확인된다. 설정을 영어로 하고도 저 단어를 넣으면 나오는 것은 전부 한국 웹 페이지들 뿐이다. 유튜브에서는 리조슈아라는 한국 래퍼의 동명 노래가 검색된다. 야후재팬에서도 마찬가지로 크롤링 된 한국의 블로그와 웹페이지들이 나오며, 엉뚱한 상표등록주의와 같은 정보들도 함께 검색된다. 

구글에서 Mummerism을 검색하면 모두 한국 사이트만 나온다. 글로벌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글에서 Mummerism을 검색하면 모두 한국 사이트만 나온다. 글로벌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 산악인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Albert Fredrick Mummery, 1855~1895)는 진정한 클라이머라고 표현되는 인물이다. 프랑스 기자이자 산악인 로제 프리종 로슈가 쓴 『History of Mountain Climbing』에도 ‘Pure Climber’라고 그를 표현했다. 
프리종 로슈는 2차대전 시기 나치에 저항하는 프랑스 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베스트셀러 소설 『Prime de Cordée』(1941, 국내에서는 1971년 산악인 지에서 김영윤 번역 ‘자일의 톱’으로 소개)을 쓴 작가로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머메리에 대한 표현에 있어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주 큰 찬사다. 즉 머메리가 알프스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산악사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획을 그었다는 말이다. 

머메리가 그의 전속 가이드였던 브루게너와 함께 1879년 마터호른 츠무트 능선을 초등하며 ‘어려운 변형 루트(difficult variation route)’라고 표현한 것이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 ‘더 어려운 길로 가는 행위’는 사실 ‘디피컬트 베리에이션’이라고 전부 써야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앞의 ‘디피컬트’는 생략하고 ‘베리에이션’만 쓰고 있다. 

머메리는 1865년 윔퍼 일행의 초등 루트인 회른리 능선과 까렐의 재등 루트 리온 능선만 있던 마터호른에서 초등 14년 만에 새로운 제3의 루트를 처음으로 올랐다. 당시에는 이런 등반은 생각하기 힘들었는데, 알프스의 산들 어디에도 재등자는 있었지만 가이드가 안내하는 등반에서 초등과 다른 루트로 그곳을 오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

 

어쨌든, 이런 모험적인 등반에 대해 머메리는 ‘머메리즘’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냥 ‘어려운 변형 루트’로 갔다고만 했을 뿐이다. 그러면 1930년대 일본에서 ‘머메리즘’이라는 단어가 발견된 건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자료를 찾아보니 해답은 금방 나왔다. 오시마 료키치(大島亮吉, 1899~1928)였다. 

일본의 20세기 산악사는 1921년 아이거 미텔레기 능선을 초등하고 1956년 마나슬루 초등시 대장을 맡았던 마키유코(槙有恒, 1894~1989)와 오시마 료키치 두 사람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되는데, 오시마는 마키의 게이오대학 후배로 함께 산악부를 창립했다. 마키유코는 아이거 등반 이후 유럽의 다양한 등반정보들을 일본에 소개했으며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사람은 당연히 오시마였다. 오시마는 1917년 중학교 때 산악부 생활을 시작해 불과 10년 남짓 산에 다니다가 북알프스 호다카 동계등반 중 추락해 29세의 나이로 숨졌지만 그가 다른 산악인들과 달랐던 건 등산에 대한 학문하는 자세와 풍부한 감수성, 그리고 철학이었다. 

오시마 료키치. 일본 근대등산 초기를 대표하는 산악인 중 한사람으로 서구산악계를 소개하고 정관적 등산관의 수많은 저작을 통해 일본산악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잘 아는 "누구에게나 저만의 하이마트가 있다"는 말을 쓴 사람도 오시마 료키치다. '고향'이라고 하면 될 말을 굳이 '하이마트'라는 독일어를 썼다.
오시마 료키치. 일본 근대등산 초기를 대표하는 산악인 중 한사람으로 서구산악계를 소개하고 정관적 등산관의 수많은 저작을 통해 일본산악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잘 아는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하이마트가 있다"는 말을 쓴 사람도 오시마 료키치다. '고향'이라고 하면 될 말을 굳이 '하이마트'라는 독일어를 사용했다. 나는 이런 표현이 서구를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오시마 료키치는 생전 잡지와 일본산악회 회보 등에 다양한 글을 남겼으며 특히 등산의 역사와 등산가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죽자 친구들은 유고집 『산-연구와 수상』(1930)을 펴내줄 정도였다. 머메리즘이라는 말도 이 책에 등장하긴 하지만 거슬러 올라 『산과 스키』 1924년 호에 발표한 ‘山の想片’이라는 글에 처음으로 쓰인다. '등산사 상 유기적 등산파의 맹장 머메리'라는 글은 처음으로 머메리 론(論)을 주장한 것이었다. 

『산-연구와 수상』 이후 서구의 산악인 32명의 산행과 알프스의 등산사에 대해 기록한 『선종자(先蹤者)』(1935)가 그의 친구들에 의해 다시 출간되는데, 이 책에는 몽블랑을 재등한 소쉬르와 마터호른의 에드워드 윔퍼 등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이 등장하지만 오시마 료치키는 유독 78페이지나 할애해 머메리 이야기를 적고 있다. 젊은 오시마 료치키가 생각했던 머메리라는 산악인은 어떤 ‘이즘(ism)’으로 표현할 만큼 산악인의 행동양상을 주도하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주의(主義)로 번역되는 이즘이라는 단어가 철학과 이론, 종교나 사회운동의 성격을 이르는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된 것은 스코틀랜드 철학자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이 사용하면서부터다. 영국 산업혁명 이후, 그러니까 오시마 료키치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새로운 트렌드를 나타내는 서구적 표현이 ‘이즘’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 이전 동양 사회에서는 ‘이즘’이나 ‘주의’라는 말은 없었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등장한 것도 1924년 경성제국대학 철학과가 생겨나면서부터다. 

참고로 알피니즘(Alpinisme)은 영어로 담론을 나타내는 ‘이즘(ism)’이 아니고 프랑스어로 ‘등산’을 뜻한다. 그래서 등산이 히말라야에서 시작했으면 ‘히말라야이즘’이라거나 안데스에서 시작했으면 ‘안데시즘’이 되었을 거라는 말은 프랑스어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틀린 말이다. 
접미사 ‘-isme’에 대해 프랑스어 사전에는 ‘-ism으로 끝나는 모든 단어는 –isme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영어의 –ism으로서의 의미를 지닌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 예로 ‘알피니즘’을 들며 이 단어는 특별한 세계관이나 추종의 의미로 표시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프랑스는 2018년 등산이라는 활동을 론 알프스와 오뜨 사보아 지역의 스포츠부문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몽블랑을 중심으로 이웃한 이탈리아와 스위스 3국은 공동으로 유네스코에 등산을 국제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달라고 제안했다. 
프랑스 문화부의 설명에 따르면 ‘알피니즘은 적합한 기술과 장비 및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물리적, 기술적, 지적 능력에 의해 모든 계절에 걸쳐 바위 또는 빙하 지형에서 높은 산과 벽을 등반하는 기술’이라고 정의되어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 머메리의 행위를 ‘머메리즘’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한 오시마 료키치의 말은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해졌는가. 해답은 월간 마운틴 2012년 4월호에 나오는데, 그때 특집이 ‘산서’였고 김영도 선생의 인터뷰와 글이 실렸다. 
‘나는 책에서 산과 만난다’라는 칼럼에는 선생이 어떻게 산책과 가까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적고 있는데, 선생이 중학교 때인 1930년대 말 평양의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오시마 료키치의 『산-연구와 수상』이었던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김영도 선생의 글과 말이 우리 산악계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머메리즘’이라거나 ‘등로주의’라는 단어들이 어떻게 퍼져나가게 되었는지 짐작하도고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그게 조사 없이 쓰여서는 안될 일이다. ‘알피니즘에 입각한 등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사와 ‘머메리즘’과 ‘등로주의’라는 우리 산악계를 휩쓸던 유령에 얼마나 많은 산악인들이 죽어나갔던가.


 -3줄 요약

-머메리즘이나 등로주의는 외국에서 통하는 말이 아니다. 

-머메리즘이라는 신조어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생겨나 한국으로 전해졌다. 

-알피니즘은 '이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