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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나드? 친아들? 친화득?
취나드? 친아들? 친화득?
  • 송희원 기자
  • 승인 2019.09.11 0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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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세계산악영화제 ‘울주서밋’ 제작지원작
단편 애니메이션 ‘친화득 B’ 최원재 감독

만삭인 아내의 잔소리를 뒤로 한 채 산을 오르기 위해 집을 나서는 한 남자. 분주한 도심을 지나서 이윽고 산에 도착한다. 힘겹게 인수봉까지 어프로치를 끝낸 남자는 나이 지긋하고 무뚝뚝한 자일샤프트를 만나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 코스는 ‘취나드 B’. 특이한 이름을 가진 탓에 남자는 암벽을 오르는 내내 왜 이런 이름인지 추리해본다. 마침내 인수봉 정상에 도착해 이 코스를 개발한 당사자 ‘이본 취나드’를 만나는데…

애니메이션 <친화득 B>(최원재 감독)는 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수채화풍의 따뜻한 그림체와 환상과 실재가 절묘하게 섞여 진행되는 이야기까지. 인수봉에서 암벽등반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감상할 법한 작품이다.

최원재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친화득 B(Chouinard B)’ 스틸.
최원재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친화득 B(Chouinard B)’ 스틸.

지난 9월 8일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게스트 라운지에서 최원재 감독을 만났다. <친화득 B>는 영화제 ‘울주서밋’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영화제 기간에 ‘월드 프리미어’(전 세계 최초 상영)로 상영됐다.

최 감독은 이 영화가 “30대인 가장이 불안한 현실을 잠시 벗어나 산에 오르며 삶의 활력을 찾는 이야기”라며 자전적인 경험이 많이 섞여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 감독은 ‘타이탄 산악회’ 회원이기도 하다. 실내 암장을 다니다가 만난 선배가 권해서 가입하게 됐다고.

“실제로 산악회에서 등반한 경험을 많이 녹여냈어요. 한 번은 ‘취나드 B’ 길을 등반했는데 이름이 무척 생소했어요. 북한산 ‘우정길’, 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등 다른 암벽길은 왜 그렇게 지어졌는지 알겠는데 유독 이 길만은 모르겠더라고요.”

그는 나중에서야 취나드길이 ‘파타고니아’ 회장이자 뛰어난 클라이머인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가 개척한 길이란 걸 알게 됐다.

영화제에서 만난 최원재 감독.
영화제에서 만난 최원재 감독.

최 감독은 원래 회화를 전공했다. 이후에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해 단편 애니메이션 <Perfect Family>, <2D or not 2D>, <Master Peace> 등을 제작·연출했다. 드로잉, 클레이, 오브제 등 소재의 제한 없이 스톱모션, 35mm 촬영, 디지털 합성 편집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오고 있다. <친화득 B>는 그가 산에 다니면서 써놓았던 시나리오로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하기까지 제작기간만 2년이 걸렸다.

“2017년 ‘울주서밋’ 심사 때 심사위원 분들이 산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보통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 심사에서는 이미지를 많이 보거든요. '울주서밋'에 선정된 이후 제작기간이 길어졌던 이유도 그림이 아직 잡히지 않고 시나리오만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최 감독은 독립배급사를 통해 이 단편을 유통할 계획이라 한다. 가급적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기회가 되면 우이동에서도 상영회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 감독은 앞으로 자연을 주제로 한 ‘인스타툰(인스타그램툰)’이나 ‘일상툰’ 작업을 해볼 계획이다. 일기처럼 종이에 끄적이는 컨셉으로 그려 보고 싶다고 한다. 산과 관련된 또다른 작품 계획은 없냐고 묻자 같은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아내가 현재 여성 클라이머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어요. 거의 완성 단계인데 3D애니메이션 작품이라 후반 작업 비용이 많이 들어요. 울주 영화제는 제작지원이 이미 끝나서 다른 쪽으로 제작지원을 알아보고 있어요.”

<친화득 B>를 잇는, 산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멋진 애니메이션의 탄생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