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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빙벽성화봉송 사용된 아이스 툴 알고 보니...
동계올림픽 빙벽성화봉송 사용된 아이스 툴 알고 보니...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8.01.27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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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테크니컬 아이스 클라이밍의 역사를 쓴 '허밍버드 아이스 시스템' 이야기

지난 1월 27일 설악산 비룡폭포에서는 SNS에서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해준 일이 일어났다. 빙벽을 오르며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를 봉송해 눈길을 끈 것. 이 행사는 본래 동양에서 가장 큰 빙벽인 토왕성 빙폭에서 예정되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토왕골 입구 높이 15m가량 되는 비룡폭포에서 미디어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
기사 SNS에 달린 댓글들

빙벽등반은 두 개의 손 도구(아이스 툴)와 얼음에 딛고 설 수 있는 발톱이 달린 크램폰(Crampon)이라는 발 도구가 필수적이다. 이날 성화봉송주자가 사용한 아이스 툴은 ‘허밍버드’라는 이름의 제품으로 과거 우리 산악인들에게도 애용되던 장비라 더욱 눈길이 쏠렸다. 

설악산 비룡폭포에 올라선 성화와 이날 사용한 허밍버드 아이스 해머(빨간 원). 사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설악산 비룡폭포에 올라선 성화와 이날 사용한 허밍버드 아이스 해머(빨간 원). 사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알프스에서 시작된 근대등반은 만년설의 대상지를 오르내리는 행위였지만 특별히 빙벽등반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않았다.

이 분야가 특화된 건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인데, 미국 이본 취나드의 힌지드형 크램폰과 아이스 해머, 영국 해미쉬 맥킨즈의 테로닥틸 아이스 엑스가 개발된 것이 이 무렵이고 이러한 장비들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건 1970년대에 들어서였다.

발터 세끼넬(Walter Ceccinel)과 클라우드 야거(Claude Jager)는 1974년 크리스마스에 프랑스 시몽 사에서 특별 제작한 아이스 엑스와 크램폰을 이용해 샤모니에 있는 드류 북벽의 900m에 달하는 빙벽을 오르며 만년설이 아닌 수빙폭을 등반하는 새로운 콘셉트의 ‘아이스 클라이밍’이라는 장르를 열었다.

로우 알파인의 허밍버드 아이스 시스템을 홍보하는 당시의 광고.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 사이에 출시도니 허밍버드 아이스 엑스와 해머, 푸트팡 크램폰, 스나그 아이스 피톤은 현대 테크니컬 아이스 클라이밍의 문을 연 장비들이다.
로우 알파인의 허밍버드 아이스 시스템을 홍보하는 당시의 광고.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 사이에 출시된 허밍버드 아이스 엑스와 해머, 푸트팡 크램폰, 스나그 아이스 피톤은 현대 테크니컬 아이스 클라이밍의 문을 연 장비들이다.

이런 시기에 ‘허밍버드’가 탄생한 것이다. 허밍버드는 1976년 미국의 로우 형제가 처음 시장에 출시한 이후 스나그(Snarg), 푸트팡(Foot-fang)과 함께 ‘허밍버드 아이스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며 이른바 ‘테크니컬 아이스 클라이밍’의 문을 연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올라온 로우캠프 사의 허밍버드 아이스 해머. 가격은 23.99달러.
미국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올라온 로우캠프 사의 허밍버드 아이스 해머. 가격은 23.99달러.

제프, 그렉, 마이크 로우 3형제는 부모님의 집 지하실에서 1967년 자신들의 성을 딴 ‘로우(LOWE)’라는 등산장비 브랜드를 만들었다. 허밍버드는 그렉 로우가 처음 고안해냈으며 그는 1972년 겨울, 역시 부모님 집의 수영장(좀 사는 집이었나 봄. 하긴 그러니 삼형제가 다 산으로 놀러...) 물을 얼려 시제품을 테스트했다고 한다.

허밍버드가 그전 제품들과 달랐던 건 피크와 블레이드를 용도에 맞게 교환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듈러 시스템’을 최초로 갖추었다는 것이다. 피크와 블레이드가 통으로 구성된 기존의 클래식 피켈이나 아이스 엑스, 아이스 바일은 만년설, 빙하, 수빙폭 등 얼음의 섬세한 조건에서 사용하기엔 부족한 단점이 많았는데 모듈러 시스템으로 된 허밍버드는 용도에 맞는 피크와 블레이드를 나사만 돌려 끼우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 각광받았고 현재 모든 아이스 툴의 원형이 되었다.

허밍버드 아이스 툴 시제품의 모습. 허밍버드는 나사를 돌려 피크와 블레이드를 교체할 수 있는 기능을 넣은 최초의 제품으로 이후 모든 아이스 툴 구조의 원형이 되었다.
허밍버드 아이스 툴 시제품의 모습. 허밍버드는 나사를 돌려 피크와 블레이드를 교체할 수 있는 기능을 넣은 최초의 제품으로 이후 모든 아이스 툴 구조의 원형이 되었다. 사진 로우알파인

제프 로우는 자신들이 개발한 허밍버드 아이스 시스템의 성능을 입증하듯 1974년 요세미티의 높이 188m 브리델벌 폭포를 초등했으며 이후 빙벽등반 테크닉 비디오를 찍어 국내에도 1990년대 많은 젊은 산악인들을 들뜨게 했었다. (특히 지금은 흔해진 피겨-4 자세를 빙벽에서 처음 선보였다!)

또 허밍버드 이후에도 프랑스 샤를레 모제와 합작해 ‘풀샤’ ‘퀘이샤’ ‘그레이드-8’ 등 1990년대를 풍미했던 아이스 바일과 크램폰 개발에 참여하며 현대 세계의 빙벽등반 장비를 주도했다.

허밍버드는 2012년 미국 <아웃사이드 매거진>이 선정한 ‘아웃도어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장비(Most Influential Gear Of All-Time)’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선정된 장비 중에는 1827년 개발된 성냥, 1908년의 10발 크램폰과 1910년의 카라비너 등도 포함되어있다. 허밍버드는 최소한 이와 동급!)

평창동계올림픽 설악산 15m 빙벽 성화 봉송은 이렇듯 알피니즘의 역사에서 매우 소중한 이야기를 지닌 아이스 툴을 이용해 진행되었던 것이다.

 

*아래 영상은 제프 로우의 워터폴 아이스 클라이밍 테크닉 비디오 영상. 지금 보면 별것 아니다. 한국 클라이머의 섬세한 아이스 클라이밍 테크닉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