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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버카드의 요세미티 오프위드 서킷 등반
크리스 버카드의 요세미티 오프위드 서킷 등반
  • 마운틴저널
  • 승인 2019.10.0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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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로서의 길은 어릴 적부터 답이 없었습니다. 서핑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집어든 카메라는 저의 인생을 빠르게 바꿔갔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 서핑은 못해보고 주야장천 사진만 찍는 것이 일상이 된 것이죠.
그러다 얼마 후 클라이밍이라는 새로운 취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등반을 하면서는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클라이밍에 푹 빠지게 된 저는 처음으로 놀러 간 요세미티 계곡에서 등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합니다. 그전까지는 샌 루이스 오비스포의 로컬 암장이나 주변 등반지에서 굳은살조차도 단숨에 베어버릴 만큼 굉장히 거칠고 날카로운 규질암 바위들만 잡으면서 운동했었죠.

요세미티에 도착했을 때 주변을 둘러보며 저는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루트가 하나도 없는데?”

“하!” 그가 웃으며 말했죠. “저기 갈라진 크랙이 전부 루트야.”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의 눈에는 가장 거대한 크랙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건 오프위드라는건데” 친구가 말합니다. “저건 등반하지 마, 아주 끔찍한 루트들이야. 널 산 채로 잡아먹는 그런 루트라고.”

주말이 지나고 저는 친구에게 그 “식인 루트”를 보여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오프위드를 시도해보고 싶다고..?” 그가 물었습니다.

초보자의 오만이었죠.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제너레이터 크랙 (Generator Crack 5.10)을 탑로핑으로 등반했는데, 응가가 나올 것 같은 코어 동작에 암벽화는 얼음 위의 스케이트화처럼 미끄러지고 얼굴, 무릎, 발목, 손 할거 없이 온몸에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으엑,” 제 피가 빌레이 줄을 타고 흐르자 친구가 말합니다. “얼른 피 닦아야겠다.”

친구와 그리그리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탑아웃에 성공한 저는 마치 노르망디 해전에서 살아남은 병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방금 겪은 일에 어안이 벙벙했죠.

 

 

이게 등반인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괴했던 니바(knee bar)와 재밍에서 오는 고통이 온몸에 퍼졌습니다. 겸손해진 저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도대체 어떻게 클라이머들이 이런 루트를 등반하는 건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프위드 테크닉은 마치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브레이크 댄스를 춰야 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요세미티의 짠 그레이드를 처음으로 경험한 것이죠. 그날 오전에 등반했던 너트크래커(Nutcracker 5.8)나 로얄 아치스(Royal Arches 5.9+)와는 전혀 다른 맛의 그레이드였습니다.
그때 다친 저의 자존감은 수년이 지나서야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암장에서 V8 볼더링 루트를 등반하는데, 격차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약한 건가? 요세미티 계곡에서 느낀 그날의 경험은 등반이라기보단 저에겐 폭력에 가까웠습니다. 이 변덕스러운 형태의 등반을 더 이해해봐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다음 몇 달 동안 저는 오프위드 클라이밍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 여러 포럼이나 채팅방을 뒤적거렸습니다. 그중에는 크랙에 무릎이 낀 클라이머, 등반 중에 토하고 똥을 지린 클라이머들에 관한 아주 끔찍한 이야기들도 있었죠.

 

“도대체 ** 이게 뭐야?”
그러다가 “트와일라잇 존을 향한 여정(Road to the Twilight Zone)”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시작이었죠. 트와일라잇 존은 60년대 오프위드의 신이라고 알려진 척 프랫이 확보물도 거의 없이 온사이트로 초등한 요세미티의 전설적인 루트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그레이드를 쓸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그 당시 최고 그레이드였던 5.10d가 매겨졌지만 오늘날의 기준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죠. 더군다나 척 프랫의 5.10d는 정말이지 그 어떤 숫자로 바뀌어도 무방한 정도였습니다. 척 프랫의 모토는 “테크닉이 나의 생명이다.”였는데, 위협적인 30m 높이의 직벽에 중간중간 10-17cm 넓이(캐머롯 #6호 크기)의 오버행 구간이 있는 오프위드 크랙인 트와일라잇 존은 주먹 재밍, 암바(armbar), 치킨 윙(chicken wing)을 필수로 사용해야 하며, 하단 구간에는 절벽에서 떨어져 나가 확보물을 설치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플레이크가 있으며 여기서는 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클라이머들은 평소보다 더 긴장한채로 등반하게 되죠.

하지만 트와일라잇 존을 넘보기 전에 먼저 시도해봐야 할 루트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저는 포럼에 나온 글을 자세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합(Ahab), 칭간도(Chingando),크림(Cream),멘탈 블럭(Mental Block) 등등 이름이 특이한 루트들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루트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합(Ahab)은 그레이드는 5.10b밖에 안되지만, 5.13급 클라이머들을 좌절시키는 루트로 악명이 나있는 루트입니다. 더군다나 수년 동안 그 누구도 온사이트에 성공하지 못하다가 한 클라이머가 작정하고 목표를 세워 시도한 끝에야 온사이트 할 수 있었던 루트죠. 그 유명한 베스 로든(Beth Rodden)조차 정말 어려웠던 루트라고 했을 정도니깐요. 그럼에도 저는 “고작 5.10d인데?”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가 이 루트가 1964년에 짐 브리드웰(Jim Bridwell)이라는 클라이머에 의해 초등 되어 난이도가 짜게 매겨진 루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던 모든 루트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세미티 하드먼 오프위드 서킷은 그야말로 고문 리스트였죠.

저는 이 루트들을 온사이트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과연 어떤 훈련법으로 접근해야 할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자 7명의 동료가 있는 작은 회사에서의 제 위치와 두 명의 자녀를 둔 가장의 무게를 비롯한 여러 책임감들이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동안 계곡에서 지내며 훈련하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었죠. 제가 최대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건 금요일 저녁에 출발해서 일요일 저녁에 복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36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은 채로 말이죠.

이것 또한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날 저는 차고의 빈 공간을 트레이닝 시설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 트레이닝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죠.
크랙 훈련 기구를 설치했고, 몇 달에 걸쳐 여러 사이즈의 크랙을 연습했습니다. 트와일라잇 존을 향한 리스트의 모든 루트를 등반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 것입니다.

제너레이터 크랙을 리딩 하는데 성공한 후, 다음 목표는 아합 (Ahab)이었습니다.  아합은 지면에서 수직으로 뻗은 루트였는데, 왼쪽 허벅지를 높이 올려 재밍 해야 하는 기이한 루트였습니다. 지금껏 제가 등반해온 오프위드와는 확연히 다른 종류였죠. 소감을 말하자면 마치 고래에 잡아먹히는 기분이 드는 루트였습니다. 머리 위로 높이 솟은 엘캡의 거벽을 올려다보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듯한 기분마저 들기도 했던 루트였죠.

아합을 온사이트로 등반하고 보니 제 가슴, 허벅지, 엉덩이에는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엔도르핀 덕분에 기분은 최고로 좋았죠. 차고에서 몇 달간 흘렸던 땀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거라며 기뻐했습니다.

리스트의 루트들은 조금씩 길어지고 난이도도 어려워졌습니다. 멘탈 블락(Mental Block), 에지 오브 나이트(Edge of Night), 크림(Cream)을 비롯한 다른 루트들은 36시간 등반 계획에서 토요일에 등반해야 하는 루트들이었습니다. 저는 온사이트를 시도할 때는 하루에 한가지 루트만 시도했는데,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체력을 아끼기 위함이었습니다.

일 년에 시도할 수 있는 날이 며칠 없기 때문에, 저는 매번 바위에 나갈 때마다 성과를 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가을이 다가오면서 내리는 비와 눈 때문에 기회의 문은 더욱더 작아졌죠. 바쁜 직장생활로 복귀하기 전까지 오직 몇 주만이 남아있었고, 문득 트와일라잇 존은 지금이 아니면 평생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꾸역꾸역 하드먼 서킷의 루트들을 차례로 완등했고, 놀랍게도 리스트에 등재된 거의 모든 루트들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보가 빈약하거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던 루트들은 내년을 기약하며 남겨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리스트에서 가장 이름있는 루트인 트와일라잇 존이 남은 상태였습니다. 결정타라고 할 수 있는 루트였죠.

추운 겨울이 올 것만 같은 날씨의 주말이 지나고, 저는 차고에서 한 주간 훈련한 뒤 요세미티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트와일라잇 존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일단 비밀로 했는데, 친구에게는 쿠키 클리프(Cookie Cliff)를 보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말을 하면 꼭 완등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생기니깐 그런 압박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날 트와일라잇 존을 올려다보는데, 항상 느꼈던 두려움 같은 것이 없더군요.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고 손은 땀으로 흥건해졌습니다. 마치 오늘이 날이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 같았죠.

저는 즉시 장비를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6 캐머롯 두 개, #5 캐머롯 두 개, #4 캐머롯 두 개와 손바닥 크기만 한 캐머롯을 몇 개 챙겼죠.

인생을 통틀어서 이렇게까지 온사이트를 원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온사이트를 위해 트레이닝 해본 적도 없었죠. 부담감이 커지자 속이 약간 메스꺼웠습니다. 다시 차로 달려가 속을 비우며 초조함을 달래야만 했죠. 1kg이라도 가벼워진듯한 느낌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첫 번째 피치를 성공적으로 등반했습니다. 두 번째 피치는 칼처럼 날카로운 플레이크에 스테밍을하고 치킨 윙 재밍을 해야 하는 무서운 구간이 있었습니다. 로프가 끊어질까 봐 걱정되지 않았냐고요? 이 구간에서 떨어지면 로프가 아니라 제 몸이 두 동강 날 수 있기 때문에 로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런. 첫 #6 캐머롯을 설치하는 순간 저는 너무 가볍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죠. 그렇게 조금씩 위로 향하다가 장비가 거의 다 떨어져서 멀리 보이는 무시무시한 플레이크까지 설치할 확보물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제기랄 대체 내가 뭘 한 거지? 아내가 알면 엄청 화내겠는걸. 이런저런 잡생각을 얼른 떨쳐버리고 또 다른 #6 캐머롯을 하나 설치하며 루트의 마지막 구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5 크기의 크랙은 더 이상 치킨 윙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주먹 재밍과 암바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꽤나 까다로웠습니다. 저보다 키가 큰 사람은 이 구간을 스테밍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172cm인 제 신장으로는 무리였습니다.

 이 구간이 크럭스일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차고에 설치한 트레이닝 기구도 정확하게 같은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핸드 피스트 스택(hand fist stack)은 저의 비밀 무기였죠. 손을 고치기 전에 무릎 재밍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천천히 위로 향했습니다. 위로는 #4 크기의 튀어나온 작은 루프 구간이 있는데, 니바(knee bar)를 멀리 뻗어 사용하는 기술이 필요한 구간입니다. 정말 신기한 점은 동작이 절망적일수록 그만큼 벽에 쉴 수 있는 발자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홀드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등반자의 몸을 집어삼키는 거대하고 어두운 크랙에 정신을 놓다 보면, 실제로 바위가 제공하는 선물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작은 인컷 크림프들, 돌기들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등반이 더 편해지죠.

그렇게 저는 완등에 성공했습니다. 동쪽으로 어렴풋이 머세드(Merced,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중부의 도시)가 보였습니다. 발목에는 피가 흐르고 얼굴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솟구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더트백(dirtbag) 라이프와 요세미티에 대한 끝없는 투자만이 이런 등반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어왔었는데, 조금의 장거리 운전과 저를 믿고 지지해준 부인이 있다면 트와일라잇 존의 온사이트 또한 이룰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루트를 60년대에 보고 개척한 저의 영웅 척 프랫, 그의 이름 옆에 저의 이름을 올릴 수 있어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선수 크리스 버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