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1-13 19:05 (수)
[칼럼] 역시 라인홀트 메스너였다
[칼럼] 역시 라인홀트 메스너였다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9.11.05 22: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시 라인홀트 메스너였다.

이번 밴프산악영화제에서 상영한 그의 신작 『치마 그란데: 150년 등반 역사(The Great Peak: 150 Years Climbing History)』는 마치 유럽 근현대사와 등산역사의 교본을 보는 듯 고증이 정확했으며 그에 대한 메스너의 설명도 깊고 넓었다.

The Great Peak: 150 Years Climbing History 스틸컷

 

가령 1869년 프란츠 이너코플러 일행이 치마그란데를 찾아가며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은 7년 전 탄생한 오스트리아산악회가 알프스에 대한 학술조사에 치중하는 것이 못 미더운 듯 투덜거렸고, 그해 생겨난 독일산악회와의 합병을 통해 클라이머들의 활동무대가 넓어질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1869년 오스트리아와 독일 산악인들이 함께 만든 독일산악회는 학자들이 결성한 오스트리아산악회의 활동 목적인 ‘알프스에 대한 지식의 전파’와 같은 것에서 벗어나 산악가이드를 훈련시키고 산장을 짓는 등 산악인의 편의를 위한 활동에 주력하며 두 산악회는 1873년 합병해 1~2차 세계대전을 겪기까지 구분 없이 활동해 아이거 북벽 초등과 낭가파르바트 등반 등 알피니즘 철의 시대에 대표 산악회로 성장한다.

The Great Peak: 150 Years Climbing History 스틸컷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며 주목되었던 건 등반기술과 장비의 발달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1869년 초등 때에는 이제 겨우 등반용 로프라는 것을 사용하기 시작하던 단계였다. 로프는 1865년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초등에서 등장하며 그전에 로프를 대신하던 것은 2m에 달하는 알펜스톡을 서로 붙잡고 오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초등자 일행은 삼으로 된 굵은 로프를 서로 묶고 짧은 안자일렌을 하며 등반하는데 당연히 확보 같은 건 없다.

또 그들은 펠트(양모)로 만든 등반용 신발이나 아니면 두꺼운 양말만을 신고 암벽을 오른다. 바위벽 아래까지는 쇠징이 박힌 트리코니 가죽등산화를 신고 가지만 암벽에서 마찰력을 얻으려면 이보다는 홀드를 정교하게 디디기 위해 펠트 등반화를 신는다고 설명한다.

The Great Peak: 150 Years Climbing History 스틸컷

영화 중 등산화에 대한 클로즈업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데, 가령 1913년 한스 듈퍼의 서벽 초등 때 역시 펠트 신발은 똑같다. 하지만 1908년 소방용 장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오토 에르조그가 개발한 카라비너나 1912년 한스 피히틀이 사용하기 시작한 하켄을 듈퍼도 사용한다.

장면이 바뀌어 1933년 에밀리오 코미치의 북벽 초등 때에 이들의 발에는 고무창을 댄 신발이 신겨있다. 메스너는 이 장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고무가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고무창으로 된 신발은 1892년 미국의 US러버 컴퍼니가 처음으로 시장에 내놓았으며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8년 북벽 직등 때에 등반가들은 더 이상 삼으로 된 꼰 로프를 사용하지 않고 나일론 케른망틀 로프를 사용하는데 나일론은 1939년부터 대량생산되었고 지금과 같은 케른망틀 로프는 1953년 에델리드 사에서 처음 출시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프 포우터와 라인홀트 메스너. photo : Banff Centre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제프 포우터와 라인홀트 메스너. photo : Banff Centre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진 저널리스트 제프 포우터와의 인터뷰는 더욱더 ‘역시 메스너’를 인정하게 하는 자리였다.

메스너는 자신이 운영하는 박물관을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산악인들과 그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며 역사를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불거지고 있는 에베레스트의 인산인해에 대해서도 “투어리즘과 알피니즘은 다르며 현재의 에베레스트는 알피니즘이 아닌 투어리즘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작정 비난할 것이 아니라 역사의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모험을 하는 등반가의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라인홀트 메스너.

제프 포우터는 저널리스트답게 누구나 궁금해 하는 질문 “1970년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지만 메스너는 “지금은 2019년”이라는 짧은 대답으로 오히려 질문자를 머쓱하게 만들어 인터뷰를 주도해갔다. 메스너에게 1970년 낭가파르바트에서 동생 권터 메스너의 죽음에 대해 묻는 것은 언론계에 불문율처럼 되어있다.

메스너는 또 최근 올림픽 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과 전통등반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쾌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올림픽 스포츠클라이밍 경기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클라이머의 등반을 보는 것은 전통등반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했지만 “앞으로 플라스틱 벽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진짜 산이 아닌 2차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에릭 하비 극장에 모인 1천여 명의 청중들은 기립했고 메스너는 짧은 인사를 마치곤 무대 뒤로 사라졌다.

박수는 계속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