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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알피니스트가 있을까?
북한에도 알피니스트가 있을까?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8.02.2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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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푸모리 등반하고 1992년 초오유 등정 성공한 북한 국적 안용종
초오유 등반 당시 한국 원정대와 35분 차이로 정상 올라

북한에도 알피니스트가 있을까?

지금은 장담할 수 없지만 분단 이전 이 땅에서 펼쳐진 산악활동이 대부분 3.8선 북쪽 금강산과 부전·개마고원을 아우르는 산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분단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또한 구 소련은 1940년대 국가 체육정책의 일환으로 등산을 장려했고 북한 또한 이에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북한체제에서의 등산이란 오래도록 지극히 반체제적인 활동이었으며 유흥의 관광문화와 다르지 않게 바라보아왔다고 말한다. 또 거주이동의 자유가 없는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산을 찾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 평화연구소장은 지난 한국산악회 세미나에서 “북한이 이러한 시각에 변화를 가져오게 된 시기는 2000년대 이후로,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산지를 개발하며 칠보산, 금강산과 백두산을 중심으로 연간 20만 명에 이르는 중국인들이 북한의 산을 찾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결국 등산을 투어리즘으로 받아들일 뿐 우리가 생각하는 알피니즘이라는 개념이 그곳엔 없는 셈.

엘리자베스 홀리의 기록에 등장하는 북한 국적의 안용종. 1949년생으로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나온다.
엘리자베스 홀리의 기록에 등장하는 북한 국적의 안용종. 1949년생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히말라야에 갔던 북한 국적의 산악인은 있었다. 엘리자베스 홀리의 기록에 그 이름이 나온다.

1989년 일본 산악 가이드 시게노 타츠지는 네팔 푸모리(7165m) 상업등반대를 꾸린다. 그는 1982년 K2북릉을 무산소로 초등반한 인물로 일본 전역에서 고객을 모집했으며, 총 8명으로 꾸려진 팀 중 안용종이라는 북한 국적의 이름이 있다.

1949년생 안용종씨는 당시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 전에 어떤 산악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적어도 히말라야 7천미터급 산을 오르려 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등산을 계속 해왔을 것이다.

이 원정은 시게노 대장과 함께 한 가이드 우츠미 마사요시, 그리고 손님으로 온 28세의 젊은 남성 고바야시 토시아키만 정상에 오르는데, 원정대는 홀리와의 인터뷰에서 “3천 미터의 고정로프를 사용해 가이드 등반을 했지만 다른 대원들은 강하지 않았다”고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안용종은 3년 뒤 다시 히말라야를 찾는다. 이번엔 초오유(8201m)였다.

1992년 가을 초오유 베이스캠프에는 8개 팀이 찾았다. 야츠하시 히데키 대장이 꾸린 14명 규모의 대규모 일본팀과 스페인 3팀,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한국 원정대였다.

1992년 9월 20일 오전 11시 25분 초오유 등정에 성공한 한국 원정대의 남선우, 김영태.
1992년 9월 20일 오전 11시 25분 초오유 등정에 성공한 한국 원정대의 남선우, 김영태.

한국 원정대의 남선우, 김영태 대원, 밍마 누루와 니마 도르지 셰르파는 서릉과 서벽을 경유하는 루트로 9월 20일 11시 25분 등정에 성공해 초오유의 107번째 등정자가 되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안용종도 있었다. 같은 루트로 오른 108번째 등정자로 기록되는 그의 등정 시간은 12시. 함께 3캠프(7500m)를 출발한 10명의 대원들이 이미 9시 30분부터 정상에 도착하고 하산을 시작한 뒤였지만 그는 산소를 쓰고도 가장 늦은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한국 원정대와 35분 차이로 같은 길을 걸었던 북한 사람 안용종. 당시 등정한 남선우 한국등산학교 교장은 “정상에서나 그곳을 오가는 길에서 북한 사람을 본 기억은 없다. 나중에 베이스캠프에 내려와 이곳에 북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히말라야의 기록에서 1949년생 북한 사람 안용종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