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05 22:46 (수)
뒷산에서 춤추다
뒷산에서 춤추다
  • 이영준 기자
  • 승인 2018.03.06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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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병 일렬횡대한 우리 등산문화의 현실
독자가 제보한 시산제 모습
독자가 제보한 시산제 모습

지난 3월 4일 수도권 어느 산에서 열린 모 산악단체의 시산제. 독자가 제보한 한 장의 사진은그저 해프닝을 넘어 지금 우리 등산문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떡시루와 과일, 돼지머리의 입에 꼽힌 지폐 한 장. 그리고 그 앞 줄지어 늘어선 막걸리 병들.

여느 등산 모임이나 입춘 무렵 이맘때면 한해의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낸다. 산을 신성시하고 경외했던 우리 문화는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가 찾을 수 있는데, 신라의 5악 숭배 사상과 산신제가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산을 향해 절을 하는 일은 이후 어느 곳에서나 누구라도 해왔던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근현대 등산 문화가 생겨난 뒤에 이는 특히 ‘시산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로산악인들은 대체로 1960년대부터 동국대학교 산악부를 비롯한 일부 산악회들이 산에서 전통적인 제와 혼합된 모습의 시산제를 지내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1971년부터 서울시산악연맹에서 가맹단체 회원들과 함께 ‘설제’라는 행사를 개최하며 전국에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매년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 북알프스의 관문 가미코지에서 ‘개산제’를 개최한다.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려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는 접근할 수 없던 산에서, 눈이 녹아 길이 뚫리며 본격적인 등산 시즌이 시작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다. 개산제는 각각의 산악단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여는 행사이기에 우리의 시산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사진을 제보한 독자는 “한해의 무사등산 등을 고하는 시산제에서 막걸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산악인과 일반인들이 참여하거나 지켜보고 있는데, 산에서 막걸리를 공식화하는 것을 보고 시산제는 저렇게 올리는 것이 표본인가보다라고 인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자연공원법 시행령 일부 개정에 따라 오는 13일부터 전국의 국도립공원 등지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고 단속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산에서의 음주단속이 산에 가는 모든 이들을 철부지처럼 보는 듯하여 이 무슨 후진국형 법안이냐는 생각도 들고, 과연 적절한 법 집행이 가능할지 의문도 들지만 사진과 같은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1991년 파키스탄 울타르 사르(7388m) 단독등반 중 눈사태로 사망해 발견된 일본 산악인 하세가와 츠네오의 수통에는 위스키가 담겨 있어 후일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고독과 추락과 죽음의 공포를 떨쳐내려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던 한 방울의 술, 그가 생전 남긴 책 제목은 이렇다.

<북벽에서 춤추다>

저 너른 뒷산 공터에서 불콰해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춤까지 추진 않았겠지.